▶ 주택시장 침체 영향으로 한산한 경매법정 모습.ⓒ지지옥션

부동산 선행지표로 꼽히는 법원 경매시장에도 찬바람이 불면서 집값이 이중으로 끌어내려지고 있다. 거래절벽으로 매매시장에서 밀린 주택 매물이 경매시장에서까지 외면 받으면서다. 집값 하락이 매수 의욕을 떨어뜨리면서 경매 수요가 하락한 것인데, 경매로 나온 매물마저 팔리지 않아 집값은 더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19일 법원경매 정보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경매로 나온 서울 주택(아파트‧단독‧연립‧다가구) 매물은 총 422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58% 증가했다.

부동산 거래절벽 상황에 지난해 갭투자나 영끌로 주택을 구매한 집주인들이 집값하락 및 금리상승에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하면서 이 주택들이 경매 시장에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경매 물권의 감정금액 규모도 커지고 있다. 대법원경매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역 부동산 경매에 나온 물권의 감정금액 규모는 1330억9843만원으로 전년 동기(704억9973만원) 대비 89% 증가했다.

경매 감정금액은 낙찰금액의 기준이 되는 금액이다. 통상적으로 입찰 예정일 6개월 전 주변 시세와 거래가격 등을 종합해 산정한다. 새로운 주인을 찾으려는 경매 물권이 늘면 그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경매 시장에 나온 매물이 대폭 증가했다. 지난달 아파트 경매건수는 88건으로 전년동기(34건) 대비 158% 늘었다. 같은 기간 연립주택·다세대는 278건에서 427건(53%)으로, 상가는 15건에서 21건(40%)에서 근린시설은 38건에서 60건(57%)으로 각각 증가했다.

이렇게 늘어난 경매 매물은 조금씩 적체되고 있다. 경매에 부쳐지는 신건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 시장 한파에 소진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진행된 아파트 경매 366건 중 낙찰건은 110건에 그쳤다. 낙찰률이 30.1%에 불과한 셈이다. 낙찰률은 입찰에 부쳐진 물건 중 낙찰자가 결정된 물건 수의 비율을 의미한다.

지난해 인기를 누렸던 서울 아파트 경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률은 전월(36.5%) 대비 14.1% 포인트 하락한 22.4%로 2001년 1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매 물건 10건 중 2건만이 낙찰된 셈이다. 서울 아파트 낙찰률은 지난해 2월 80%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3분의 1 이하로 급락했다.

낙찰가율도 전월(93.7%)보다 4.0% 포인트 낮은 89.7%를 기록하면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90% 선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감정가보다 10% 이상 낮은 가격에야 매수 수요가 있다는 의미로 감정가 1억원인 아파트가 8970만원에 낙찰됐다는 의미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7개월 동안 110%를 웃돌며 5차례나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지만 매매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평균 응찰자 수는 4.0명으로 전월(5.9명)보다 1.9명 줄었다.

경매시장에 찬바람이 부는 것은 부동산 매매시장 자체가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올 들어 8월까지 전국의 주택 매매량은 총 38만539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3만7317건)과 비교해 47.7% 감소했다. 수도권은 15만444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3% 감소했고, 지방은 23만943건으로 38.5% 줄었다.

수도권 중 서울은 4만3818건으로 53.8% 급감했다. 유형별 거래량은 아파트가 1∼8월 38만5391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7% 감소했고, 아파트 외 주택(15만9905건)은 34.4% 줄었다.

거래절벽에 집값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낮아진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5.16% 내렸다. 8개월 누적 기준으로 종전 최대 낙폭을 기록했던 2010년(-1.71%)의 3배에 달한다. 연간 기준으로도 실거래가가 가장 많이 내린 2008년 기록(-4.01%)을 올해 단 8개월 만에 뛰어넘었다.

경매물건 감정가가 수요자 인식보다 높게 책정됐다는 인식이 커진 것도 한몫했다. 경매로 나온 아파트 매물의 감정은 통상 경매 개시 6개월~1년 전에 진행되는데 감정이 진행됐던 시기가 집값이 고점을 찍었다는 우려가 나온 지난해였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집값 하락이 매매시장은 물론 경매시장 낙찰가율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데 낙찰률마저 떨어지면서 '경매로도 안 팔린다'는 심리가 일반 매물 가격에 다시 영향을 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 가격 평가에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일반 매매시장에서도 거래절벽이 이어지고 있고 가격을 낮춘 급매 위주로 거래되다 보니 경매에서의 감정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에 몇 번 유찰이 돼야 응찰자들이 모이는 상황이고 대출 규제, 금리 인상과 같은 이슈가 계속되고 있어 침체 분위기는 이어지고 옥석가리기는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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