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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 이후 채권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중견 건설사들이 단기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행사 자금줄도 마르면서 PF 시행사 빚보증을 섰던 중견건설사들이 사업실패로 빚을 떠안는 '흑자도산' 가능성도 제기된다.

2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미분양 증가, 건설사 실적 악화가 예상되면서 건설사들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받아줄 투자자를 찾기 어려워졌다. 이에 PF 보증이 많은 기업, 부채비율이 높고 위험지역 분양이 많은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위험 신호가 나온다.

◆ 연말 만기 PF 32조원…부실 사업장 '빨간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대규모 건설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건설사가 금융권의 자금을 조달해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주택사업에서는 시행사들이 시공사들의 신용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주택을 짓고 분양을 통해 수익을 낸다. 그러나 올해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고 미분양 및 미착공 단지들이 급증하면서 수익 기대가 크게 낮아졌다.

반면 지난 1~2년간 보였던 부동산 호황으로 건설사들은 적지 않은 사업지에서 PF 보증을 선 상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PF 자금은 32조3908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초래한 '레고랜드'사태로 인해 PF 보증에 대한 신뢰는 크게 낮아졌다. 최근 롯데건설이 7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포기한 것이 대표 사례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시황 악화로 인해 발생하는 미착공 PF 우발채무 급증이다. 한국기업평가(KR) '건설업 신용보강 A to Z'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17개 건설사의 PF 우발채무 총규모는 15조8000억원에 달한다. 2018년 말 13조5000억원 대비 17% 증가했다.

이는 지난 1~2년간의 호황기 때 수주했던 사업들이 시장 악화로 착공이 지연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미분양, 미착공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제공한 PF 보증이 건설사 부채로 확정될 가능성도 커졌다. 착공은 커녕 분양조차 되지 않으면서 현금을 확보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코오롱글로벌, 한신공영, 아이에스동서, 신세계건설, 동부건설 등이 특히 PF발 위험이 높은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들 건설사들은 전체 사업장 중 대구, 울산, 경북, 전남 등 미분양 위험 지역 사업장 비중이 전체의 30%를 넘는다. 특히 동부건설과 아이에스동서는 위험지역 비중이 50%를 상회한다.

◆ 금융권, PF시장 대출 축소…커지는 건설사 '흑자도산' 우려

시장이 악화되면서 금융권은 PF대출 취급 중단 등 건설 관련 금융 비중을 낮추는 중이다. 최근 농협중앙회는 전국 농·축협에 오는 11월 4일부터 부동산 PF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신규 공동대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시공능력 평가 순위 100위 이내인 시공사가 지급을 보증한 경우 예외적으로 신규 대출이 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였지만 시황이 악화될 경우 범위를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단기 유동성 악화, PF 부실화 우려가 커지면서 중견건설기업들은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건설사 흑자부도가 줄을 이었던 2008년과 2011년의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회수,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실패가 이어지면서 100대 건설사 중 45개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바 있다. 2011년에도 시공능력 40위였던 임광토건을 비롯해 고려개발, 월드건설, LIG건설, 범양건영, 진흥기업 등이 24개 건설사가 도산했다. 흑자를 내던 기업들이 시행사 PF 빚보증으로 인해 부채를 떠안으면서 부실화 된 사례가 상당수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강원도에서 제공한 보증사업도 부도처리되는 사례가 생기면서 민간 시행, 시공사들의 보증은 신뢰도가 낮아진 상황"이라며 "자금이 부족한 사업을 PF를 통해 개발하는 것인데 PF자체가 쉽지 않게 되면 시행사는 부도 위기에 몰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밝힌 부동산PF 지원책에 대해서도 잿빛 전망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기존에 계약된 부동산 PF에 보증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새로운 부동산 PF 건은 해당이 없다"며 "PF 기준이 엄격해지는 만큼 건설사들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착공에 나서기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 차입금도 '돈맥경화' 우려…현금상환 자구책

태영건설은 내년 상반기에 약 1400억원의 회사채가 만기 도래한다. 다만 보유 현금은 많지 않다. 6월말 기준 태영건설의 부채비율은 488%를 기록하고 있고 유동비율도 100% 이하로 떨어졌다. 부채가 현금화 자산보다 많은 상태다.

이 외에도 내년 상반기 만기가 오는 중견건설사 회사채는 △아이에스동서 1200억원 △한양 1150억원 △동부건설 750억원 등이다.

문제는 건설사 회사채는 올해 상반기 이후 높지 않은 수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상반기에도 상황이 악화될 수 있는 만큼 건설사들은 만기 회사채를 회사 보유 현금으로 상환하는 등 자구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실제 태영건설은 지난 7월 만기가 돌아온 14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현금 상환한 바 있다. 지난 3월에도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하기도 했다. 이에 태영건설은 실적은 1분기 283억원 흑자에서 2분기 74억 적자로 돌아섰다.

한신공영 역시 지난 9월 만기가 돌아온 200억원의 단기사채(CP)를 현금으로 상환했다. 시장에서 CP를 상환 발행할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다. 한신공영이 상환한 차입금은 올해 상반기 한신공영 순이익 123억원보다 많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회사채를 발행하는 금리가 지난해보다 2~3배 이상 오른 상황"이라며 "회사채 발행 시도가 실패할 경우 '자금부족' '부도우려' 등의 구설이 생길 수 있어 이 방안은 크게 고려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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