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준(Fed)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네 차례 연속으로 단행한 가운데, 미국(4%)과 한국(3%)의 기준금리 차이는 1% 벌어졌고 금융당국은 정부의 유동성 지원조치 추진 현황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한편 달러 가치가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아 '킹(King) 달러'의 위세를 보이며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넘나드는 가운데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에 나선 결과 외환보유액이 한 달 사이 30억 달러 가까이 줄어들었다.
금리와 환율이 크게 변동하는 시기에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통한 금융시장의 안정 도모도 매우 중요하다(은행법 제1조).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4대 시중은행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KIKO와 유사한 TRF(TargetRedemption Forword, 목표수익 조기상환 선물환)를 판매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보도는 무척 실망스럽다.
KIKO보다 훨씬 불공정한 TRF
필자는 2019년 학술논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TRF의 불공정성을 주장한 바 있다('증권법연구' 제20권 제2호). 그 첫째는 우연성의 훼손과 이로 인한 불공정성이다. TRF 계약의 행사환율 변동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기업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동되는 것을 예정한 것이기 때문에 계약의 내용상 환율변동의 우연성을 훼손함으로써 공정성을 해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투기거래를 강요하는 구조상의 불공정성이다. 예컨대 '4배수 조건과 과도한 델타 조건' 등으로 기업의 투기거래를 유발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불공정성이 내재되어 있다. 환헤지를 필요로 하는 일반기업에 전문가인 은행이 환투기거래를 유발하는 상품을 판매했다면 공정성이 문제될 수 있다.
셋째는 편면적 장기간 계약의 불공정성이다. 편면적 장기간 계약 조건은 사실상 기업의 큰 손해를 예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공정성이 지적될 수 있다. 필자는 이 논문의 결론으로 헤지 목적으로 판매되는 TRF 상품은 불공정성이 문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헤지상품이 아니라 투자상품의 성질이 강하다는 점을 명확히 설명하도록 하는 등 판매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였는데 아직도 국내 4대 시중은행이 TRF를 버젓이 헤지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연구자로서의 안타까움이 크다.
KIKO 판결과 사법(私法)적 처방의 한계
2013년 KIKO 소송 대법원 판결의 한계는 근본적으로 계약자유의 원칙이 강조된 나머지 양 당사자의 대등성에 대한 판단이 부족하였다. 그 결과 사법(私法)적 영역에서 불공정성 판단에 대하여 많은 아쉬움을 남겼고 불행하게도 이는 가해 은행들이 이름만 바꾼 KIKO이자 더욱 독성이 강한 TRF를 지속적으로 출시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 참담한 현실을 초래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KIKO류의 파생상품에 대하여 사기성을 인정한 터라 우리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된 바 있다. 더욱이 국내에서도 KIKO는 2010년 당시 이미 담당검사가 사기혐의로 기소를 한 바 있으나 당시 검찰 수뇌부의 급작스런 인사조치로 담당검사가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결과 국제적 판단과는 달리 사기성에 대하여는 은행들에게 면죄부만 주고 말았다.
더욱이 2019년 KIKO 분쟁조정 결정은 6개 은행 중 우리은행만이 수용하였을 뿐 대다수의 은행이 사실상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결과 감독기관이자 중립적 전문가인 금융감독원의 권위는 크게 훼손되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법원의 불공정성과 사기성에 대한 미흡한 판결로 전문가인 금감원은 KIKO 상품 자체의 불공정성이나 사기성에 대하여는 검토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이고 그 결과로 발생한 규제의 틈새를 타고 TRF가 활개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시장 혼란기에 바람직한 은행의 역할
현재와 같은 국제적 금융시장의 혼란 상황을 무사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에만 모든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은 현명하다고 보기 어렵다. 국내 대형 시중은행의 공공성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제 대형 시중은행들은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자발적으로 이바지하여야 한다. 따라서 TRF 뿐만 아니라 은행의 수익창출에는 도움이 되지만 금융시장의 안정에 폐해가 될 수 있는 상품은 스스로 철회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 자발적으로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가 부족하거나 금융시장의 안정을 저해하는 은행들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은 법원의 사법(私法)상의 판단으로 주저하기보다는 은행법 등 공법상의 규제 권한을 발휘하여 다소 거칠게 단속할 필요가 크다. 위기상황에서는 평상시의 처방과는 다른 강한 대응이 정당화될 수 있다. 연준의 자이언트스텝은 평상시라면 채택될 수 없는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