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고야시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에 있는 환상 직기}>[사진=박성호 기자]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 기업 토요타 자동차 창업자인 토요다 키이치로는 ‘일본인의 손과 머리로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평생 자동차를 연구·개발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토요타 그룹의 시초는 ‘방직 회사’였다.

천을 만들던 토요타 그룹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은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과 ‘고객제일주의’ 등 토요타 그룹만의 철학을 방직 회사 때부터 계승해 왔기 때문이다. 토요타 그룹은 나고야시에 있는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과 토요타시에 있는 ‘쿠라카이게 기념관’을 운영하며 토요타 그룹만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지난 26일과 27일 나고야시와 토요타시에 있는 두 곳을 각각 방문했다. 두 곳을 관람하며 1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토요타 그룹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었다.

▶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의 섬유기계관}>[사진=박성호 기자]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이 위치한 이곳은 ‘토요다 사키치(이하 사키치)’가 자동직기(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자동으로 옷감을 짜는 직기) 발명을 위해 만든 작은 시범 공장이 있던 장소다. 장남 ‘토요다 키이치로(이하 키이치로)’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내달 중으로 방문객 700만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은 미래 발전을 이끌어갈 이들에게 일본의 제조기술 역사를 체계적으로 소개한다는 사명 하에 설립했다. 섬유기계관, 자동차관으로 구성됐으며 두 전시실에서 사키치와 키이치로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사키치는 토요타 그룹을 세운 창업주로 방직 기기를 개발해 일본 섬유 사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직기 하는 것을 보고 ‘누군가를 편하게 하기 위해’ 직기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1906년 개발한 ‘환상직기’는 토요타 그룹의 상징으로 전시돼 있다.

▶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에 있는 G형 자동 직기}>[사진=박성호 기자]

장남 키이치로가 개발한 G형 방직기의 특징은 토요타 자동차 철학의 모태가 된다. 그의 직기는 2570줄의 실이 걸려 작동하는데, 단 하나라도 끊어지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춘다. 오차율 0%의 기계는 지금도 흔치 않다. 토요타 그룹이 ‘완벽’을 추구하는 이유다. 낭비하지 않고 사람을 기계 지킴이로 만들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의 자동차관과 쿠라카이케 기념관은 토요타 자동차를 세운 키이치로가 자동차를 연구개발한 흔적과 토요타 자동차의 철학을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키이치로는 도쿄대 기계공학부 방직학과를 졸업하고 유럽·미국 등으로 시찰을 나갔다. 출장 중 마주한 미국의 자동차는 그의 마음을 빼앗게 된다.

일본으로 돌아온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한다. 당시 지진에서 살아남은 키이치로는 나고야로 돌아와 복구를 위한 작업에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 포드의 트럭이 물자 수송을 수월하게 돕는 것을 보고 ‘곧 자동차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직감했다.

▶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자동차관에서 당시 부품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사진=박성호 기자]

다만 GM·포드 등 미국 자동차 회사는 일본에서 부품 조립 공장만 짓고 있었다. 영영 일본이 자동차 기술력을 보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친 것. 1929년 그는 젊은 기술자들을 모아 ‘토요다 자동자직기제작소’를 설립했다. 또 자동차에 적합한 철을 생산하기 위해 ‘아이치 제철’을 설립하는 등 제품을 100% 국산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키이치로는 ▲매일매일 일을 개선하자. 안전하고 쉽게, 효율적으로 하자 ▲현지현물(직접 가서 보고 만져봐야 답이 나온다 ▲늘 고객이 우선이다 등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차를 만드는 것보다 파는 것이 어렵다며 ‘고객제일주의’를 천명했다.

▶ <{토요타시 쿠라가이케 기념관. 트럭이 고장나 고객이 의하자 당시 토요다 키이치로 사장이 사죄하고 급히 포드 트럭으로 화물을 옮겨줬다는 일화}>[제공=한국자동차기자협회]

포드 트럭을 끌고 와 고객에게 사과한 일화는 고객제일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키이치로는 정부의 승용차 제작 인가를 받기 위해 시범적으로 트럭을 만들어 팔았는데, 고장률이 매우 높았다. 키이치로는 당사 차량이 고장이 나면 포드 트럭을 타고 가 사과하고선 포드트럭에 짐을 옮겨 담았다. 끌고 간 자사 차량이 또 고장 나면 고객 불편이 더 커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제작한 승용 모델 ‘AA’ 역시 고객제일주의를 잘 보여주는 차량이다. 첫 모델인 만큼 고장률이 높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는 언제든 포드나 크라이슬러 등 타사 부품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경적도 동물용과 사람용 경적으로 구분 제작해 마차를 끌고 가는 말이 덜 놀래도록 했다.

▶ <{쿠라카이게 기념관에 전시된 ‘AA’}>[사진=박성호 기자]

또 ‘저스트 인 타임’ 개념도 고안했다. 제품을 쌓아 놓으면 낭비이고, 직원들의 일이 늘어나는 불필요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객 주문에 따라 즉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철학은 더욱 발전된 개념과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키이치로는 방직 회사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사명 변경 및 새 엠블럼 응모를 받는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토요타’라는 명칭과 지금의 엠블럼이다. 창업주의 성 ‘토요다’에서 한 획을 더해 일본에선 행운으로 여기는 8(八)획, 즉 ‘토요타’를 만들었다. 개인과 회사는 분리돼야 한다는 사키치의 가치가 반영된 이름이기도 하다.

▶ <{쿠라카이게 기념관에 전시된 ‘크라운’}>[사진=박성호 기자]

키이치로의 사후인 1955년 국산화 차량인 ‘크라운’이 출시된다. 크라운은 당시 획기적인 디자인과 방향지시등 등을 탑재해 큰 인기를 끌었다. 크라운은 현재 11세대 완전변경을 거치며 토요타의 대표 차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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