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한화·BHC 등 대기업, 잇달아 해외 브랜드 유치
경쟁 과열에도 초기 성과 좋아…국내 시장 급속 성장
일각선 “이미 검증된 브랜드력, 승계 발판 이용” 지적도

유통업계 오너들이 미국 햄버거 브랜드 유치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맥도날드, 버거킹 등 전통적인 햄버거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사이, 새로운 해외 유명 브랜드들의 국내 진출에는 속도가 붙었다.
이 덕에 국내 햄버거 시장 규모도 최근 3년새 2조원대에서 5조원대로 급속 확장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성장세는 탄력을 받고 있으나, 일각에선 해외에서 브랜드력을 이미 검증받은 사업을 오너일가가 승계 발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희수 부사장이 ‘쉐이크쉑’ 론칭으로 가장 먼저 프리미엄 버거 시장에 뛰어들었다. 허 부사장은 지난 2011년 미국 방문 당시부터 쉐이크쉑의 사업성을 엿봤고 2015년 마침내 ‘쉐이크쉑 엔터프라이즈 인터내셔널’과 한국 내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쉐이크쉑은 이듬해 7월 국내에 첫 매장을 연 이래 현재 총 26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쉐이크쉑이 국내 시장에서 수년째 선두권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실적을 내자 이달 초 SPC그룹은 파리크라상에서 쉐이크쉑 한국사업부를 물적 분할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신설 법인 ‘빅바이트컴퍼니’는 그룹 내 핵심 사업으로 떠오른 쉐이크쉑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시장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는 게 목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들여온 미국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도 올 3분기 안정적인 실적을 내며 만족스러운 첫 성적표를 거뒀다. 파이브가이즈는 김 부사장이 국내 론칭부터 매장 운영까지 전담하고 있다.
파이브가이즈 한국 사업을 운영하는 한화갤러리아 자회사 에프지코리아는 올해 3분기 기준 35억8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공시했다. 이는 국내 1호점인 강남점 매출만 반영된 수치며, 3분기 영업 일수를 고려하면 일평균 약 3900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계산된다. 지난 10월부터는 여의도 더현대서울 소재의 2호점도 영업을 시작했다.
BHC그룹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햄버거 브랜드 ‘슈퍼두퍼’를 국내에 선보인 지도 1년이 흘렀다. BHC그룹은 지난해 11월 글로벌 1호 매장으로 강남점을 열었고 현재까지 25만개 안팎의 버거 판매량을 올린 것으로 추산됐다.
월평균 1만5000명 이상의 소비자들이 매장에 방문하는 등 시장 안착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BHC그룹은 올 4월 홍대점, 6월 코엑스 스타필드점까지 매장 수를 총 3개까지 늘린 상태다.
이처럼 유통업계 내 미국 햄버거 브랜드 유치 행렬이 이어지면서 국내 햄버거 시장도 급속 확장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5년 2조3038억원 △2018년 2조8000억원 △2020년 2조9636억원 등 2조원대에 머물렀던 국내 햄버거 시장 규모는 올해는 연간 기준으로 5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 덕분에 시장 성장세는 탄력을 받고 있으나 일각에선 그룹 후계구도에 이름을 올린 오너일가 자녀들이 햄버거 사업을 승계 발판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해외에서 상품성을 검증받은 유명 브랜드를 국내 론칭한 만큼 경영 능력과 성과를 증명하기 쉬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 같은 시선에도 현재 업계 최대 관심은 계속해서 국내 진출설이 돌고 있는 ‘인앤아웃’ 브랜드를 어떤 회사가 차지할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인앤아웃은 미국 3대 버거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지만, 한국에서 가끔씩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만 운영할 뿐 직접적으로 국내 법인을 세우거나 파트너를 통해 한국 사업을 진행하지는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전통적인 프랜차이즈 버거 브랜드가 고전하는 사이 미국에서 들여온 햄버거 브랜드를 중심으로 업계 지각변동이 발생하는 중”이라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괜찮은 초기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미 해외서 브랜드력을 검증받은 만큼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고 서비스가 좋아 인기가 지속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2019년 ‘노브랜드’ 버거를 론칭하며 햄버거 사업에 뛰어든 바 있다. 미국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니고 가성비 전략을 펼쳤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대기업 오너일가가 햄버거를 중심으로 한 외식사업에 뛰어든 선례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