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대표 1인 체제…처벌 받으면 폐업 불가피”
“근로자 일자리마저 빼앗는 꼴…준비할 시간 필요”
“2년 유예 법안, 하루빨리 국회 통과되길” 학수고대

50인 미만으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적용 범위가 확대된 지 보름여가 지난 가운데 ‘적용 2년 유예’를 바라는 중소건설기업계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잔뜩 위축된 건설 경기 속에서 중처법 부담까지 떠 안으면서 줄도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단체협의회와 중소건설단체 등 중소기업 관련 단체들은 전날 결의대회를 열고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적용 유예를 다시 한번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모인 중소건설인·중소기업인 4000여명은 국회를 향해 “중처법 확대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법안을 하루 빨리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영세한 중소건설사들의 줄도산을 야기할 수 있는 데다 근로자들의 일자리마저 빼앗는다는 이유에서다.
중처법은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규정하는 법령이다. 시행일은 2022년 1월 27일이다.
다만 법 시행 당시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선 공포(2021년 1월27일) 후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 기간이 지난달 27일로 끝났다.
전문건설사를 대변하는 대한전문건설협회(KOSCA)의 윤학수 회장은 결의대회에서 “근로자와 사업주 중 과실이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면 된다”며 “모든 사고의 책임을 사업주에게 묻는다고 해도 중대 사고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중처법으로 인해 사업주가 구속되면 회사는 결국 도산하게 되는데 이때 실업자가 된 직원들의 생계는 누가 챙기겠느냐”며 “중처법이 근로자 안전권 확보라는 제정 취지에 맞게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전문건설사는 종합건설사의 관리 계획을 토대로 각 공종별 전문공사를 직접 도급 혹은 하도급받아 수행하는 업체를 말한다. 대다수가 50인 미만으로 영세한 상황으로, 지난 1월 기준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등록된 전문건설사는 총 5만4646곳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도 이날 “이미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중대 사고와 관련한 처벌 내용이 모두 들어가 있는데도 중소기업계의 의견은 무시한 채 중처법을 시행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중처법 유예 법안을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반드시 통과시켜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처법 적용 범위 확대는 특히, 지방 중소건설사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산에서 건설업을 운영하는 A씨는 EBN과 통화에서 “지난 몇년간 건설업황이 위축됨에 따라 지방 건설사들은 웅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최근엔 중처법 적용 범위까지 확대돼 난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중처법의 취지가 건설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 좋긴 한데, 안전관리 비용 등의 지출이 갑자기 생기다 보니 당혹스러운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업 종사자들은 법 적용 확대를 우선시 하기 보단 중소건설사들이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비용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건설업 관계자는 “우리나라 재해 중 절반 이상 정도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게 현실”이라며 “특히나 중소기업은 사고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에, 중소기업 대표자가 수사를 받을 시 결국 해당 건설사는 폐업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건설사들이 늘어나게 되면 근로자들의 일자리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이 해당 법과 관련해 준비할 수 있는 비용 등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게 법 적용 확대보다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소건설사는 경영자가 1인인 경우가 많다”며 “중처법 확대 적용으로 중소건설사 대표가 처벌을 받을 시 대체 방법이 없어 폐업이 불가피하다. 이는 근로자들의 일자리마저 빼앗는 꼴”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중처법 확대 시행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에 대한 여야 협상은 현재 중단된 상태로, 오는 29일 예정된 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도 상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