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 인사 시기를 스스로 언급할 정도면 얼마나 (대통령의) 깊은 신뢰를 받는지 알 수 있는 거죠.”(금융감독원 직원)
화제성 금융인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이 예외 없이 주목받았다. 지난 25일 ‘개인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을 마치고 나온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밝힌 ‘그 말’ 말이다. 이날 그는 총선 이후 거취에 관한 질문에 “다른 공직을 맡은 생각이 없다”고 단언했다.
타협이 없는 집념가로 유명한 그는 “이 자리(금융감독원장)에서 잘 마무리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사회적·공적인 역할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내각 이동설에 대해 분명히 밝혔다.
그는 뒷날을 염려하기도 했다. 그는 “3~4분기 되면 제가 빠지고 후임이 와도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며 금감원 훗날까지 챙겼다. 그리고 임원들에겐 “2~3분기 중요한 이슈가 많고, 이를 다 챙기려면 남아서 해야 하니 동요하지 말고 업무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금감원 전체 조직엔 “지금 (내가) 빠지게 되면 현안 대응, 위기 대응 역량이 좀 흔들릴 수 있고 팀워크가 흔들릴 수가 있어서 가급적 그것들이 마무리될 수 있는 시점까지는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좋지 않으냐고 생각한다”라고 주문했다.
이 원장은 총선과 관련해 국회의원 후보만큼이나 자주 거론됐다. 총선 차출설과 함께 신설 검토 중인 대통령실 법률수석비서관실로의 이동설에 휩싸였다. 이 원장은 모두 “아니”라면서 부인했다. 그리고 현업 과제에 집중하겠다고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통솔력으로만 일이 진행되면 얼마나 쉬울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결국 일은 분산된 팔로워(직원들)가 완성해낸다. 올해 1분기에만 홍콩H지수 ELS 배상안 마련에 부동산 PF사업 방향 검토, 기업 밸류업 확대로 금감원은 ‘영끌’했다.
금융당국자로 ‘일을 자처하는’ 금감원으로선 ‘업무 증식 속성’을 갖고 있다. 이 원장이 “올해 3~4분기 정도면 제가 빠지고 후임이 오더라도 무난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라고 말했지만 하반기가 고비일지도 모른다는 게 금감원 조직 내 염려다.
10월 열릴 국정감사 때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금감원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란 소문도 벌써 돈다. 정부와 최측근인 이복현 원장, 이 원장의 금감원이 거대야당에 포위됐다는 얘기다. 금융권에선 “이 원장은 최대한 금감원장 임기를 마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지만 덩치 큰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정부의 기관장으로선 사실상 침몰하는 배에서 동분서주하는 격“이라고 우려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금감원 주요 축인 임원들의 에너지 고갈 상태가 심각하다. 총선 이후 임원 교체설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부원장 뒤를 이어 부원장보 및 그 이하 실무진들도 도미노 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금감원 팀장급 이하 정기 인사가 7월과 12월로 바뀐 데 따라 아직 인사 교체 시기는 남아 있다. 다만 임원이 새로 선임되면 누군가는 공석을 채워야 하는 만큼 국장급 이하 실무진 내에서도 소규모 자리 이동이 예상된다.
이 원장은 원장 취임부터 이슈메이커였다. 그의 거취 소문에 따라 금감원 내부의 인사 추측이 달라졌고 금융사들의 스탠스 초점이 달라져서다. 이슈메이커는 화제성 큰 소재를 빠르게 포착해 의견을 개진하고 대세를 이끈다.
하지만 루머와 낭설이 반복되면 그만큼 피로감을 안기는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이 원장이 금감원에서 봉직할 날도 많지 않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올바른 끝맺음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