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중러가 마주하고 있는 접경지역, 방천ⓒ구글 지도 캡처

국경은 인간이 그어 놓은 경계다. 세계·국가·지역 권력이 등장하고 힘을 겨루는 선(line)이다. 최근의 국경은 단절에서 교류의 ‘접경공간(Contact Zone)’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반도·동북아 정세는 위태롭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평온하다. 1334㎞에 걸친 이 두 강은 오랜 세월 이곳의 생명들을 먹여 기르고 있다. 밤이면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네온사인이 가득한 중국, 무채색 북한이 극적으로 대비됐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생명이 피어난다. 6박7일간 2200㎞에 이르는 조중국경 지역을 다녀온 이야기다.[편집자주]

▶ 용호각에서 본 방천 거점의 역할.ⓒEBN 김남희 기자

[중국(연길·방천·도문)=김남희 기자] 여럿 나라가 부대끼는 국경선을 본 적이 있나. 오밀조밀, 따닥따닥 국가들이 밀집한 유럽이 대표적이다. 특히 스위스가 그렇다. 스위스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내륙국가다. 그래서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가 스위스 공식어로 쓰인다. 두만강 접경 지역인 중국 방천도 그랬다. 중국 영토와 한반도 끝자락에 와본 경험이 특별했다.

중국 길림성 훈춘 시 방천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북한, 북쪽은 러시아와 중국이 경계를 이루는 형상이다. 남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세 나라의 접점. 군사 거점이기도 해 평화롭게만 보였던 러시아 마을은 겹겹의 철조망으로 국경을 이루고 있었고 중국과 북한도 마찬가지 였다. 평생을 대한민국에서만 살아온 기자가 한반도 북구의 끝 지점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심지어 러시아와 맞붙은 이곳은 한반도의 끄트머리다. 살아생전 여기에 와본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훈춘 세관을 거쳐 북·중·러 접경지역인 방천의 용호각으로 차량 이동 중에 검문을 받고 신분증 검사를 받았다. 국경지역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 용호각에서 본 방천 지리적 설명.ⓒEBN 김남희 기자

방천 국경전망대에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 간의 경계선을 그어놓은 알림판을 보았다. 거기엔 우리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었다. 바다와 영토를 둘러싼 국가 간 역학관계가 여실히 피부에 전해졌다. 관광객 사이로 러시아인과 중국인, 몽골인 등 다양한 민족이 보였다. 방천 전망대는 매표소부터 구름인파들로 가득 찼다. 8층에 이르는 전망대까지 우리 일행들은 걸어 올랐다.

용호각에 서니 저 멀리 해무로 덮인 동해가 보이는 듯 했다. 날 맑은 땐 동해가 선명히 보인다고 현지인은 말했다. 이 지역은 두만강을 젖줄로 삼아 경제특구로 낙점되기도 했다. 이 지역은 태평양으로 날아오르게 하는 '횃대'와 같다. 중국은 이곳을 거점으로 동해-태평양으로 나아갈 수 있고 러시아는 동아시아 내륙으로, 북한 러시아와 동해, 태평양으로 뻗어나가려고 한다. 이 계획은 이미 실행되고 있다. 두만강의 수심을 3-3.6미터로 준설해서 동해에서 바로 2000~3000톤의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항구 예정지는 이미 낙점됐다.

전통적인 러시아 군사요충지, 방천을 하루아침에 경제요충지로 바꾸겠다는 이 계획은 사회주의 국가 북·중·러 새로운 경제권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라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동해진출을 구상 중인 중국은 적극적이지만 북한과 러시아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단다. 심지어 북한과 어색한 관계인 일본마저도 두만강의 준설 비용등 투자 대비 효율이 적다는 이유로 회의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 2015년 10월 북중러 접경지역 모습. 왼쪽의 하얀 건물까지 중국의 영토, 그 윗 쪽으로 러시아 영토, 두만강 건너는 북한 나선특별시의 원정리이다.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은 북러 철로 교량으로 나진~핫산을 연결하는 구간이다. 저곳에서 동해와의 거리는 약 15 km이다.ⓒEBN 김남희 기자

며칠 전 백두산을 지난 이후로는 두만강이 펼쳐졌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이 강은 과거 이 일대가 콩이 많아 두만강(豆滿江)이라 불린다. 얼음이 얼지 않는 계절에는 유목(流木)민들이 활발하게 활동했고 강 길이는 521km에 달한다. 두만강은 깊고 넓은 물길 때문에 탈북이 쉽지 않은 지역이다. 강은 생명수이기도 하지만 ‘길’이기도 하다. 두만강 뱃사공은 새로운 곳을 향한다. 압록강과 함께 두만강은 고려청자를 싣고 타국으로 가는 뱃길의 시작점이었고, 임진왜란 때는 전함이 상시 대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함경북도 경흥 두만강 하류의 둘레 8km의 작은 섬 녹둔도를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녹둔도는 세종 이후 500년간 조선의 땅이었지만 청나라와 러시아의 거래 속에 허망하게 러시아에 점령돼 버린 우리 땅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한 곳이기도 했다. 원래는 두만강 하류의 섬이었지만 강의 퇴적 작용으로 쌓인 흙으로 섬이 러시아의 연해주와 붙어버리면서 은근슬쩍 러시아의 영토로 넘어갔다. 심지어 1937년 스탈린 정부는 녹둔도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모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곳에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북한은 1990년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 녹둔도 반환건의를 했으나 거부당했다.

방천의 배후도시 훈춘엔 조선족 동포 7만명이 산다. 지난 8세기부터 북한과 중국 간 무역의 중심지였던 훈춘은 지금도 무역과 국경 중심지로 손색이 없다. 이곳은 또 백두산 호랑이를 복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된 훈춘 일대는 야생 백두산 호랑이의 대표적 서식지로 꼽히고 있다. 원시림이 잘 보존돼 있어서란다. 도로 중간 중간 호랑이를 조심하라는 낯선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 두만강 너머 북한 지역이 보인다.ⓒEBN 김남희 기자

훈춘의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 무역센터를 설립해서 외국으로부터의 투자 상담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통관 등 수출입을 위한 시설도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북한과 중국 간의 무역 접경지도 다양화되고 있다. 과거 북중 육로 무역의 중심지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평안북도 신의주였지만 현재는 대규모 육로 무역이 길림성 훈춘(琿春)~함경북도 나선 원정리, 길님성 장백(長白)~양강도 혜산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무역 거점이 옮겨가고 있는 이유는 중국 세관 당국이 단둥에서 북한으로 반출되는 물품에 대한 통관 검사를 상당히 까다롭게 하는 것은 물론 반출 물건에 대한 세금을 훈춘이나 창바이보다 상당히 부과하기 때문이라고 현지 언론은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대북 제재 관련 불똥이 튀는 것을 우려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 '두만강 푸른 물에~' 노랫 소절이 떠오르는 두만강.ⓒEBN 김남희 기자

이 지역은 북·중·러 간의 새로운 실험장이 되고 있다. 이른바 두만강관광합작구는 기본적으로 북·중·러가 함께 공동구역을 정하고 공동으로 개발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프로젝트다.

이 작업의 핵심은 국경을 뛰어넘은 경제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세 나라가 관광이라는 자원을 공유해 이익을 얻고 무비자·무관세·무비자(3일)로 상호 편의성을 도모한다.

해당 공간 범위는 중국 연길-훈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하산구, 북한 라선특구-라진항이라는 3대 중심도시로 지목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두만강 하류가 중심축으로 훈춘시의 방천, 북한의 두만강동, 러시아 하산진으로, 약 100㎢의 국제관광합작구가 형성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 방천 용호각에서 북중러 국경을 바라보는 관광객들.ⓒEBN 김남희 기자

연변대학교 한 교수는 "각국이 10㎢의 토지를 개발건설구역으로 제공하고, 3국이 공동으로 관광레저오락 시설을 건설해 ‘1구 3국’ 공동관리 모델 탐색할 것"이라면서 "국경을 초월해 공동 구역을 지정해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소지역협력 전략을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고 설명했다.

학계에 따르면 북·중·러 접경지역 개발은 두만강 하류라는 동일한 지역을 둘러싸고 러시아의 관점, 중국의 관점, 북한의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해주 연안의 항만을 연계하며 아태지역으로의 연결에 목적을 뒀다면, 중국은 훈춘 지역을 창구로 삼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자루비노, 슬라비얀카, 북한의 라진항, 청진항과 같은 동해안을 연계하는 차항 출해(借港出海; 타국의 항만을 빌려 해양진출) 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북한은 이런 중국의 동해 진출, 러시아의 한반도 영향력 강화의 전략을 감지하며 라선특별시의 개발을 꾀하려 한다.

▶ 북한 라진항과 러시아, 중국ⓒ구글 캡처

전문가들은 이 계획에 두만강만을 봐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협의적 의미에서 소삼각지대 포시에트(러)-훈춘(중)-라선특별시(북), 대삼각지대 블라디보스토크(러)-연길(중)-청진(북)의 삼각지대를 북·중·러 접경지역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개발 배후지역까지 살펴보면 상상이상의 개발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지역의 창구와 전진기지 및 배후지까지 기능별로 살펴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일행들은 두만강 강변공원으로 이동했다. 통상 이곳을 찾는 한국인의 단골 여행지는 백두산, 연길, 훈춘, 두만강공원 등이다. 두만강공원 광장에는 조선족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한국의 트로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흥을 돋우고 있었다.

가이드가 일행들에게 경고를 했다. 두만강 넘어 보이는 북한 도시에 집중하기보다, 셀카(자기 사진)정도 선에서 사진 찍을 것을 권고했다. 중국 공안들이 북한 사진을 집중적으로 찍는 이를 살필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한국인의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과거에는 두만강에서 유람선을 타면서 북한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 된다고 했다. 두만강 광장에 잠깐 머무는 동안 요령껏 사진 찍으라고 누군가 귀띔했다. 두만강 광장에서 본 북한은 너무나 가까이 있었다. 과거엔 탈북자들이 이곳에서 북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달러 뭉치를 여기서 던져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브로커 등을 통해 계좌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북한 가족에 돈을 보낸다. 북한 측 건물에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그 곳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탐방 내내 버스 안에서 일행은 "북에 넘어가 냉면 한 그릇 먹고 오자"는 농을 주고받았지만 정작 북한 코앞에 서니 모두가 침묵했다. 며칠 전 비가 내려서 일까. 진흙탕으로 흘러가는 강을 보니 북·중·러 사이에서 배제된 남한의 답답한 입장이 오버랩 됐다.

▶ 두만강 너머의 북한 ⓒEBN 김남희 기자

북한의 눈길은 러시아와 중국을 향한 지 오래다. 김정은은 계속해서 남북을 '적대적인 두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있고, 임종석 전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장도 "이상에서 현실로 전환하자"며 자신의 '두 국가론'을 제시했다.

임 전 실장은 "미국 대선 후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북미 대화가 진행되면 한국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일침 했다. 북·중·러가 만나는 두만강에서도 한국이 낄 자리는 없어 보였다. 심지어 중국은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라고 명기하며 대한민국을 철저히 배제한 모습이다.

두만강은 동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한반도를 상징하는 동해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한국의 역사성을 대표한다. 한반도 끄트머리 방천에 와 보니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은 한국이 옆에 설 여지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현재로서는 국가 안보, 평화로운 관계, 북핵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지만 방천은 다양한 가능성을 신호탄처럼 쏘아올리고 있다. 특히 중국의 동진, 러시아의 남진이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동해와 한반도를 어떤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 뚜렷하단 얘기다. 일본과의 충돌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다. 그 뒤엔 또 미국이 있고 때에 따라선 트럼프가 있을 수도 있다.

중·러 대륙 국가가 그 영향력을 동해까지 뻗으려고 하자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확대 등으로 맞서는 구도가 보인다. 한국은 그 사이에 서 있다. 갈등의 역사인 한반도가 이제 분쟁의 바다까지 긴장해야 하는 처지다.

▶ 두만강에서 본 북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걸려 있다.ⓒEBN 김남희 기자

게다가 이 지역의 한민족 계열의 만남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고려인, 조선족, 한국인, 북한인이 한인 디아스포라를 이곳에서 형성하며 서로 상호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이렇게 초국경적 지역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 통합일까, 새로운 분열의 신호탄일까. 이곳은 북·중·러 경제협력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동북아 지역협력의 구도와 남북한 미래를 이끌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고가영 서울대 연구교수는 북·중·러 접경지역에 대해 “초국경적 북·중·러 접경 지역은 변방에서 창조성과 혁신이 창출되는 공간으로 재인식될 수 있다”면서 “변방은 언제나 인류사의 새로운 중심이 돼 왔고 변화와 창조의 공간이었다"고 진단했다.

연변대학교 전홍진 교수는 “우크라-러시아 전쟁 이후 러시아의 북한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북한에서 루블화가 통용하는 등 북한의 경제 숨통이 조금씩 트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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