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BN]](https://cdn.ebn.co.kr/news/photo/202410/1641503_652518_456.jpeg)
고려아연을 둘러싼 영풍그룹 장형진 고문 집안과 최윤범 회장 집안의 경영권 분쟁이 후반전으로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최 회장이 75년 만에 동업을 끊은 배경에 시선이 모아진다.
재계에서는 표면적으로 3세 들어서면서 변화된 경영문화 및 가치관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분쟁으로 이뤄졌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주요 요인은 최윤범 회장 측의 무리한 계열분리 시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하면서 고려아연의 거버넌스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독립적인 업무집행 감독기능을 상실한 기존 이사회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고 판단하고, 특정 주주가 아닌 최대주주와 2대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요 주주들의 의사가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신규 이사를 선임해 이사회를 재구성하기로 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도입하고자 하는 집행임원제도는 경영에 관한 의사 결정, 결정된 사항의 집행, 집행에 대한 감독 권한이 모두 이사회에 집중돼 있는 현재의 고려아연 지배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를 확립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고려아연 이사회의 정상화를 위해 사외이사 12명과 기타비상무이사 2명을 새롭게 선임키로 하는 안건을 상정한다.
고려아연 분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영풍그룹은 창업자 고 장병희 회장과 고 최기호 회장이 1949년 공동 설립한 영풍기업을 전신으로 한다.
초대 최기호 회장이 1977년 병환으로 경영에 손을 떼자 동업자 장병희 회장이 2대 회장에 올랐다. 선대의 공동경영체제 전통은 후대에도 이어졌다.
균열의 조짐이 일어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최 씨 일가의 지배력이 낮아진 탓이다. 두 가문은 2세 경영까지 영풍 설립 초기 지분 20%대 중반을 유지했다. 영풍이 고려아연을 자회사로 지배하는 식이다. 영풍 경영은 장 씨 가문이, 고려아연은 최 씨 일가가 운영했다.
그러나 최 씨 일가가 신사업 등 투자 실패로 영풍 지분을 장씨 오너가와 매각하며 이런 균형도 깨졌다. 실제로 최창걸 명예회장은 2006년 영풍 지분 약 6%를 매각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풍그룹이 2019년 7개였던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하고 승계 구도를 모두 완료한 것도 영향이 미쳤다. 당시 장형진 고문은 20년 전 자신이 보유한 영풍 지분을 자녀들에게 거의 모두 넘겼다.
반면 최 씨 일가의 2세들이 영풍 지분을 비롯해 고려아연 지분도 절반 정도 밖에 승계되지 않아 증여세만 최소 2400억원에 달했다. 증여세 재원 마련이 어려운 최씨 가문 입장에서는 마땅히 대처할 여력이 없었다.
최 씨 일가는 장 씨 일가와 달리 승계구도도 명확히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러는 사이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의 지배력은 더 벌어졌다. 당시 장 씨 일가의 ㈜영풍에 대한 직접 지배력은 31%에서 40%로 증가했으며 계열사 등의 지배력 또한 높아졌다.
특히 고려아연의 경우 최기호 회장의 장남 최창걸 명예회장, 차남 최창영 명예회장, 삼남 최창근 회장 등 최기호 회장의 2세들을 비롯해 3세들까지 고려아연 및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만큼 장 씨 일가와 지배력 확대에 따른 위기감이 높아졌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지난 2019년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계열분리 시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최 회장의 취약한 고려아연 지분(1.8%)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소각 및 우호 세력 확보를 통해 영풍의 지배력을 낮췄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실제 고려아연은 자사주를 한화, LG화학 등과 맞바꾸며 우호 세력으로 확보했다. 이를 통해 이전까지 10%포인트 넘게 벌어졌던 최씨와 장씨의 고려아연 지분 격차는 빠르게 줄었다. 2022년 말에는 유상증자를 통해 마침내 현대차그룹까지 우호지분(약 5%)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올해 열린 주총에서 양사의 갈등은 이어졌다. 양사는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영풍 측의 ‘배당 증액 요구’는 고려아연이, 고려아연 측의 ‘제3자 유상증자 허용 여부’는 영풍이 승리했다.
지난 7월에는 고려아연과 계열사들이 40년 넘게 입주했던 영풍빌딩을 떠나 종로구 그랑서울빌딩으로 이전하며 완전한 선 긋기에 나섰다. 결국 장씨 측은 동업 청산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 확보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3세 경영에 들어서면서 이전 경영진과 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