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공개(IPO)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됐다. 하반기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라 상반기 대비 다소 위축됐던 IPO 시장이지만 10월 중순 이후 IPO 시장 분위기는 더욱 악화됐다. 대어급 IPO의 상장 철회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제외 지난달 22일 이후 11종목이 신규 상장됐는데 더본코리아를 제외하고 모두 상장 첫 날 주가는 공모가를 하회해 거래를 마쳤다.
공모가를 밑돈 10개 종목 중 지난 11일 기준 공모가를 상회하는 주가를 기록한 것은 성우 한 종목뿐이다.
특히 최근 들어 공모가 하회폭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공모가 대비 30% 이상 하락한 종목은 1종목에 불과했지만, 올해 들어 3종목이나 첫날 종가가 공모가 대비 30% 이상 떨어졌다. 이 중 2개 종목은 이달 상장된 만큼 최근 IPO 시장의 경색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이날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노머스도 상장 직후 공모가 대비 30% 이상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케이뱅크의 상장 철회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케이뱅크는 부진한 수요예측 결과에 상장 연기를 결정한 바 있다.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상장 철회다.
당초 케이뱅크는 올해 하반기 IPO 최대어로 다소 침체됐던 IPO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IPO를 완주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시장 위축 가속화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토스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가 국내 상장 계획을 철회하고 미국 시장 상장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부진한 IPO 시장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윤철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상장 시장에서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고, 상반기 대비 하반기 들어 IPO 밸류에이션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준점이 높아지고 있다”며 “기업별로 상장일 주가 퍼포먼스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만큼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IPO 시장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어급 기업의 상장에 시장 분위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활발한 자금 흐름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상장 기업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종목은 4000여개에 달하는 가운데 연간 상장폐지 종목보다 신규 상장 종목이 더 많은 상황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좀비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있으면서 증시 전반에 대한 저평가가 고착화되고 있으며, 새로운 기업들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좀비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면 건전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로 전환될 수 있다”며 “원칙에 맞는 퇴출제도를 운영해 진입과 퇴출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기업 밸류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관심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체질 개선이 발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 등 주요국 증시는 역대 최고치를 돌파하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코스피는 2500대 박스권에 머무르고 있다. 비트코인도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투자 또는 코인 투자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점점 국내 주식투자에 대한 매력은 떨어지고 있고 유동성도 한정적인데 신규 상장 종목만 많아지면서 시장이 더 클 수가 없다”며 “유동성을 살리는 것이 IPO 시장성장의 요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