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면서 국내 배터리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절실해진 배터리업계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ESS는 에너지가 남아돌 때 저장한 뒤 부족할 때 쓸 수 있도록 한 저장 장치다. 불규칙하게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에서 필수적이며 북미·유럽 장의 수요가 크다. 신재생에너지 시장 확대와 인공지능(AI) 시대 가속화에 따른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ESS 시장은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ESS 시장 규모는 2023년 185GWh에서 2035년 618GWh로 3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미 지역은 2023년 55GWh에서 2035년 181GWh 규모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올해 3분기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으나 ESS 부문에서는 호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ESS 부문 매출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54%, 35% 늘었다. 직전 분기 대비로는 각각 120%, 19%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캐즘 장기화로 수익 다각화를 모색하는 배터리 업계는 ESS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 침체 장기화에 대비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법인 LG에너지솔루션 버테크는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 테라젠과 8GWh(기가와트시) 규모 ESS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버테크 출범 이후 최대 규모 계약이다. 버테크는 2026년부터 4년간 고용량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셀이 적용된 제품을 북미 현지에서 생산해 공급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5월 한화큐셀과도 4.8GWh 규모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한화큐셀은 미국에 태양광발전소 사업을 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오는 2028년 미국 ESS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지난 7월 미국 최대 전력기업인 넥스트에라에너지에 1조원대 규모의 ESS용 배터리를 납품하는 계약을 따냈다. 공급 규모는 6.3GWh로 지난해 북미 전체 설치 용량인 55GWh의 11.5%에 해당한다.
ESS 사업 확대를 위해 2026년 양산을 목표로 LFP 배터리 도입도 준비 중이다. 삼성SDI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ESS용 LFP 배터리 대형화 셀 검증을 마치고 울산 사업장에 마더 라인 구축을 시작했으며 해외 생산 거점으로는 미국을 우선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SK온도 올해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전기차 수요 변동에 대한 손익 변동성을 줄이고자 ESS 등 전기차 외 배터리 애플리케이션 수요를 위한 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SK온은 올해 초 ‘인터배터리2024’에서 ESS용 배터리를 선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