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회사채 대신 단기금융시장에 몰려
연말 채권 시장, 롯데케미칼 EOD 여파 ‘주목’

10월 금리 인하 효과도 잠시 11월 국내 채권 시장은 미국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여파로 약세가 뚜렷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불안정한 정세에 롯데케미칼 기한이익상실(EOD)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발행량과 유통량 모두 급격히 위축됐다.
건설채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달 들어 회사채 발행에 나선 건설사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급한 사정에 PF-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강세 발행이 이어졌다. 고금리의 만기가 짧은 단기 금융 시장을 찾는 건설사들이 다시 많아지면서 기업별 유동성 위기 대응 능력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월(셋째주 기준)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1973억원으로, 전월 같은 기간 9조3480억원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0월만 해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동결과 미국 FOMC의 비둘기적 발언으로 금리 인하 효과가 기대되면서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활발했다. 10월 넷째주를 포함한 총 발행 규모는 10조 700억원으로, 회사채 시장이 모처럼 풍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4년 만에 돌아온 미국 트럼프 정권은 금리인하 호재를 단 번에 신기루로 만들었다. 11월 첫째주까지 조 단위로 쏟아지던 회사채 발행 물량은 둘째주 6023억원 대로 급감했고, 셋째주는 아예 전무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의 재집권으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재연되면서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인상되고, 인플레이션이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높을 거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인플레이션 압력 상승이 예상되면 연준이 금리 인하를 신중이 조정하게 되고 이는 우리 기준금리에도 영향을 미쳐 금리 인하 속도가 더뎌질 거란 관측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내년 6월 연방기금금리가 3.50~3.75%로 설정될 가능성은 15.6%로 하락했고, 4.00~4.25% 및 4.25~4.50%로 형성될 가능성은 각각 32%와 14%로 상승하며 연준의 인하가 예상보다 제한적일 거란 전망이다.
우지연 DS투자증권 연구원은 파월 의장을 비롯해 연준 인사들이 금리 인하 속도 조절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했다“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강달러와 가계부채 우려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리 방향성이 갑작스레 달라지자 회사채 유통량도 주춤하는 추세다. 지난달 한국은행 금리 인하 결정에 거래량이 18조 4232억원까지 치솟으며 전월(9월)대비 3배 넘게 급증했으나 11월은 셋째주까지 현재 8조 4802억원에 그치고 있다. 주로 1년 물 이하 중심으로 지표물 대비해 약세가 뚜렷했다.
특히 셋째주는 롯데케미칼의 2조원 규모 기한이익상실(EOD) 이슈가 발생하면서 롯데케미칼 포함 계열사들도 발행과 유통 시장에서 약세를 보였고 이는 전체 시장 위축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단 분석이다.
실제로 롯데그룹 계열사 채권들은 EOD 발생 이후 유통시장에서 계속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1일 약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가 민평금리 대비 67~75bp(bp=0.01%포인트) 높은 수준에서 거래됐다. 전날 최고치인 86bp보단 크게 줄었지만 최근 회사채가 -10~10bp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기관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시장에 처분한 결과다. 같은 날 롯데지주 회사채도 민평보다 71bp 높은 금리에 거래됐고 롯데렌탈도 56~60bp 오른 수준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다행히 여러 악재에도 불구, 채권의 신용위험을 가늠하는 국내 신용 스프레드는 최근 소폭 반등했다. 그러나 내년 역시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용 스프레드 확대 리스크는 잠재해 있다는 지적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신용리스크 상승세가 가시화된다면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 흐름을 보일 여지가 커지면서 회사채 시장은 더욱 경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결정에 회사채 발행 채비에 나선 건설사들은 다시 자취를 감췄다. 10월 21일 롯데건설 회사채 발행 이후 지금껏 회사채 시장을 찾은 건설사는 비우량-우량 가리지 않고 단 한 곳도 없었다. 금리 인하가 가시화되면서 10월까지 회사채로 실탄을 분주히 마련하던 부동산·리츠(REITs·부동산 투자회사)들도 11월 들어 발을 끊었다.
자금 사정이 급한 건설사들은 단기금융시장으로 몰렸다. PF 유동화증권 물량이 급증한 것. PF 유동화증권은 시행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대출채권을 기초로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이나 ABSTB(자산담보부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보통 시행사가 대출 약정에 따른 대출 결제일보다 빨리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데 최근에는 금융사가 아닌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유동화회사와 바로 대출약정을 맺고 유동화회사가 ABCP나 ABSTB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ABCP 발행량(ABSTB 포함)은 11월 들어 매주 1조원씩 늘어나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재집권이 확실시된 11월 첫째주 ABCP 발행 규모는 6조 1213억원(발행 건수 154건)으로 시작해 둘째주 7조 7502억원(발행 건수 154건)로 일주일 새 1조원 이상 늘어났다. 셋째주에는 발행 규모가 8조 4571억원을 기록, 발행 건수는 200건을 돌파했다.
이 중 PF(부동산 프로젝트)를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ABCP는 11월 첫째주 1조 2887억원(발행 건수 61건)에서 시작해 둘째주 2조 2960억원(발행 건수 86건), 셋째주 3조 5428억원(발행 건수 113건)까지 늘어났다.
PF 유동화증권 발행 규모가 늘었다는 건 돈 들어갈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별로 보면 첫째주는 롯데건설(300억원), KCC건설(817억원), 신세계건설(500억원), 대우건설(550억원)이 PF-ABCP를 찾았으며, 둘째주에는 현대건설(1160억원), 한화 건설부문(300억원), 롯데건설(298억원), DL이앤씨(1320억원) 등이 발행했다. 셋째주는 건설사도 발행 규모도 급증했다. 삼성물산(2000억원), 현대건설(2900억원), GS건설(1000억원), 현대건설기계(1163억원) 등이 물량을 쏟아냈다. 대부분 A2+이상 등급의 우량 ABCP지만, 만기 구조가 최대 1년에 불과한 만큼 건설사 별 유동성 리스크에 대한 각별한 관리가 요구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2월 회사채 시장은 기관들의 연말 북클로징(회계연도 장부결산)과 트럼프리스크로 예년과 같은 유동성 풍년을 기대하기 힘들 거란 분석이다. 그 중에서도 롯데케미칼 EOD 여파는 연말 채권 시장과 크레딧 업계를 흔들 최대 변수로 지목되고 있다.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설에 대해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지만, 기관들의 롯데그룹 회사채 매도 기조는 뚜렷하다.
이런 가운데 연말 신용평가사들의 정기평가에서 롯데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 강등 이슈마저 불거지면 채권 시장과 크레딧 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현재 롯데그룹 계열사 중 신용등급 전망에 ‘부정적’ 꼬리표가 달린 곳은 롯데케미칼, 롯데지주, 롯데물산, 롯데렌탈, 롯데건설 등으로 연말 정기평가에서 등급 강등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설은 단순히 ‘설(設)’로 끝날 확률이 높지만, 그룹 전반의 실적 부진의 장기화는 분명 우려스런 수준”이라며“신평사 정기평가에서 핵심 계열사 중 하나라도 등급 강등이 이뤄지면 롯데그룹 뿐만 아니라 회사채 시장 전체가 경색되면서 연말·연초 효과를 기대한 다른 기업들의 자금줄도 막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