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경영자(CEO) 임기 만료를 앞둔 증권사들이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하고 있다. 올해 실적 개선에 성공한 데다 내년에도 증권업을 둘러싼 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전일 계열사별 조직 개편 및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한국금융지주는 이번에 기존 사장단의 변동 없이 임원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사실상 연임이 결정됐다는 평가다.
앞서 KB금융지주는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개최하고 KB증권의 CEO인 김성현·이홍구 사장을 대표이사로 재추천했다. 하나금융지주도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연임 후보자로 추천했다. 메리츠증권은 임기와 무관하게 김종민 각자 대표의 사장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
CEO 연임이 결정된 증권사의 공통점은 올해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3분기 만에 누적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달성하면서 올해 증권업계 첫 1조 클럽 성과를 거뒀다. KB증권도 같은 기간 순이익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51.18% 증가했고, 하나증권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 2년간 가장 큰 리스크였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를 일단락하고 급변하는 금자본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안정적인 실적을 거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또 내년 업황 불확실성도 연임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본격적으로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기에 대한 예상 경로가 변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통화정책도 달라질 전망이다. 외부 환경 변화에 시의적절한 대응을 위해 안정적인 회사 운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국내 사업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증권 거래 시장은 대체거래소(ATS)가 등장함에 따라 복수거래시장으로 변화하게 된다. 각 증권사는 최선집행의무 기준과 이 기준에 맞춰 투자자 주문을 집행해주는 자동주문전송 시스템인 SOR(Smart Order Routing)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처음으로 이뤄지는 복수거래체제이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장애 상황과 고객 민원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안정적인 조직 운영으로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종합투자계좌(IMA) 등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제도도 개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대표이사가 바뀌는 큰 변화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3분기까지 1조원에 가까운 누적 영업이익을 거둔 김미섭·허선호 미래에셋증권 대표도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다만 중소형사 CEO들의 연임 여부는 불확실하다. 대형 증권사들이 올해 가파른 실적 개선에 성공한 반면 중소형사들은 부동산금융의 공백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지난해보다 부진한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SK증권은 전년 대비 적자전환했고 다올투자증권은 적자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3분기 누적 순이익이 321억원에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46.7% 감소했다.
황준호 다올투자증권 대표, 전우종·정준호 SK증권 대표, 서정학 IBK투자증권 대표 모두 내년 3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데 부진한 실적이 연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이 좋은 상황에서 경영진을 무리하게 바꿀 이유가 없다”며 “변화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안팎의 환경이 불확실하다보니 안정적인 회사 운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