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부터 자본시장 유관기관장들이 미래 먹거리로 가상자산 상장지수펀드(ETF)를 언급하면서 가상자산 ETF 출시 기대감이 커졌다.
반면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추진되기 쉽지 않아 이미 시장이 가동 중인 해외증시와 또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졌다. 한국 자본시장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또 나온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각 자산운용사들은 내부적으로 가상자산 ETF에 대해 공부하는 등 허용 가능성에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과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이 지난 2일 가상자산 ETF를 올해 중요 신사업으로 언급하면서 가상자산 ETF 국내 도입에 대한 논의가 보다 진전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이 허용됐고 지난해 말 총 순자산은 1054억 달러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더욱이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미국의 자산운용사들은 가상자산 관련 ETF 상품을 줄줄이 신청하고 있어 가상자산 ETF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국은 자본시장법상 비트코인 현물 ETF을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고,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에 이은 가상자산 발행과 유통 등에 관한 규제가 담긴 가상자산 2단계법도 추진할 계획이지만 가상자산 현물 ETF에는 아직까지 보수적인 입장이다.
문제는 국내 투자자들이 가상자산 ETF 거래를 위해 해외로 적극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외화증권 순매수 상위 50위 안에 가상자산 ETF 종목들이 이름을 올렸다.
최근 1개월간 국내 투자자들은 코인베이스 주식에 커버드콜 전략을 적용해 수익을 추구하는 TD YILDMX CN ETF를 1억975만3592달러 순매수했고, 이더리움 가격 변동의 2배 수익률을 추구하는 2X ETHER ETF 순매수 규모도 7372만1629달러를 기록했다. △TIDAL TRUST II YIELDMAX MSTR OPTION INCOME STRATEG △2X BITCOIN STRATEGY ETF △PROSHARES ULTRA BITCOIN ETF 등도 투자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상자산 ETF 투자규모가 아직까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동성이라는 것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해외 가상자산 ETF 투자가 늘어날수록 국내 투자 유동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국내 시장에서 해외 시장으로 투자자금의 이탈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상자산 분야에서도 빠르게 뒤따라가지 못한다면 한국 자본시장의 경쟁력 제고 노력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상자산시장에 대한 트럼프 신정부의 입법 동향을 면밀히 분석해 글로벌 정합성과 국내 경제 상황이 반영된 제2단계 입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며 "국내에서 디지털자산에 대한 인식 차이가 상당 부분 존재하지만 디지털자산시장 발전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신탁업을 자본시장법 체계로 규율할지, 가상자산법 체계로 규율할지를 조속히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특히 가상자산 현물 ETF의 조속한 제도화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선관주의의무와 도산절연이 보장되는 가상자산 커스터디를 자본시장법 또는 가상자산법체계에 제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가상자산 ETF 국내 허용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자본시장법 등 중요한 법 개정 단계도 있지만 제도가 마련돼도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하다는 이유에서다. 가상자산 ETF 승인을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가격 산정 매커니즘 등 시장 조작을 방지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실제 거래를 위한 다양한 실무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법령이 바뀌고 나서도 하위단에서의 업무가 많아 올해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며 "비트코인을 누가 보관할거며 LP는 누가 할 것인지, 컴플라이언스 리스크 관리 이건 어떻게 할지 너무 실무적으로 복잡한데 아직 방향성도 없어서 내부에서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