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그린 배터리 업계 이미지 [출처=뤼튼테크놀로지스]
인공지능(AI)이 그린 배터리 업계 이미지 [출처=뤼튼테크놀로지스]

국내 배터리 업계 양대산맥인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이 생존을 건 출혈 경쟁을 펼치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에 따른 실적 악화로 현금 창출력이 둔화한 상황임에도 막대한 비용을 수반한 대규모 증설에 거리낌 없이 나서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가운데 과거 반도체 시장에서 벌어졌던 '치킨게임'이 배터리 업계에서 재현되는 모습이다.

16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의 지난해 1~3분기 영업활동현금흐름은 -5133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자본적지출(CAPEX)은 4조866억원으로 연결 잉여현금흐름(FCF)은 -4조5999억원을 기록, 재무적 부담이 가중됐다.

FCF는 기업이 벌어드린 수익에서 설비투자액을 제외하고 남은 값이다. 대개 잉여현금흐름이 적자면 외부로부터 자금을 수혈할 필요성도 커지게 된다.

실제로 삼성SDI는 최근 부진한 실적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줄곧 단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9월 약 4100만 달러(약 598억원)를 투자해 미국 미시간주 오번힐스에 위치한 배터리 공장 증설에 나선 데 이어 지난해 8월에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약 35억달러(약 5조1135억원)를 들여 미국 현지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3분기 누적 잉여현금흐름은 -7조1656억원을 기록했다. 자본적지출이 9조950억원에 달한 반면 영업활동현금흐름은 1조9294억원에 그치면서 잉여현금흐름 적자 규모가 7조원을 넘겼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필수 영역을 제외한 신규 설비투자 규모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현금 곳간을 비우는 전략을 택한 것을 두고 해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 업체들과의 장기 경쟁을 펼쳐야 하는 만큼 향후 자금력 부문에서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1위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기준 현금성 자산 규모는 5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파악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LG에너지솔루션의 잉여현금흐름은 부정적일 것인 반면 중국의 배터리 제조사 CATL은 강력한 FCF를 통해 순현금을 계속해서 늘려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출처=각 사]
[출처=각 사]

■ 전기차 캐즘과 중국 공세 맞물려…"반도체 산업 '치킨게임' 재현" 우려도

국내 배터리사들이 현금 창출이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도 설비투자를 적극 단행하는 배경으로는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 영향이 가장 크다. 전기차 캐즘 장기화와 중국 공세가 맞물리면서 "밀리면 끝"이라는 위기감이 업체들의 지출 경쟁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91.4GWh(기가와트시)로 전년 동기(85.5GWh)보다 6.9%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의 글로벌 점유율은 전년도 13.8% 대비 2.2%포인트 떨어진 11.6%을 기록했다. 점유율 순위도 3위에 머물렀다.

삼성SDI는 28.9GWh의 사용량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0.1%의 미미한 성장률을 보였다. 점유율은 전년도 4.7% 보다 1.0%포인트 하락한 3.7%에 그쳤다. 

반면 중국 기업들의 배터리 사용량과 점유율은 하루가 무섭게 오르고 있다. CATL은 28.6% 성장한 289.3GWh를 기록하며 36.8%의 점유율을 장악했다. 

외에도 2위에 오른 비야디(BYD)는 35.9% 성장한 134.4GWh로 17.1%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CALB는 22.2% 증가한 36.3GWh를 기록하며 6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다.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산 배터리가 시장을 점령해 나가면서 배터리 업계도 '치킨게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성훈 중앙대학교 융합공학부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자본 지출을 늘린 것은 지금 규모를 키워놓지 않으면 향후 미국 시장에서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중국 업체들로 인해 배터리 업계도 과거 반도체 산업의 치킨게임처럼 변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특히 미국의 경우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스템 구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추후 물량을 못 마추면 생존이 어려울 것이란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들은 트럼프 2.0 시대·전기차 캐즘 등 리스크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겠단 전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ESS용 LFP 배터리 생산을 준비 중으로 올해부터 르노에 5년간 39GWh 규모의 LFP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ESS는 초거대 배터리로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대용량 전력이 필요한 데이터센터 등에 필수적 제품으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시장으로 꼽힌다. 최근 미국에서 전력망의 확충 일환으로 ESS 도입 사례가 늘고 있다.

삼성SDI 역시 ESS 판매를 늘려 수익창구를 다변화하겠단 방침이다. 이를 위해 차세대 전력용 ESS 배터리 '삼성 배터리 박스(SBB) 1.5'를 최근 미국에서 선보이는 등 북미·유럽 시장에서 ESS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미국 메이저 전력 회사들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공급 물량을 안정적으로 수주 확보한 상황"이라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 나갈 수 있을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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