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환 유진투자증권 글로벌매크로팀장. [출처=EBN]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글로벌매크로팀장. [출처=EBN]

‘마라라고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자택인 마라라고 리조트 이름을 딴 가상의 경제·무역 정책 구상을 의미한다.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빗대어 만들어진 말이다. 내용은 미국 달러가치를 약세로 유도하고, 미국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주요 교역대상국들과 환율과 무역 조건을 협의하는 것이다. 

실제 ‘마라라고 합의’는 없다. 가능성도 낮다. 그런데도 미국 달러는 약하다(연초 이후 달러 -8%). 반면 미국 이외 주요국 통화는 강해지고 있다. 극적인 사례가 대만달러다. 5월초 연휴 동안 대만달러는 미국 달러 대비 이틀 동안 10% 올랐다. 5월 5일 대만달러화 거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였다. 원달러도 1400원을 하회했다. 

주목할 점이 있다. 미국 경제나 주식시장이 훼손되지 않았는데도, 미국 달러가 약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4월 고용지표는 예상보다 좋았다(신규 일자리 수 17.7만건, 예상 13.8만건). 미국 S&P500은 4월 2일 이후 하락 폭을 만회했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 무역대상국과의 관세 협상 기대가 작용했다. 미국 주가 변동성도 평상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도 미국 달러 위치는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경기 문제가 아니다. 미국 자산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징후다. 관세전쟁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매입을 덜 할 것이라는 우려가 유럽·일본에 이어 아시아 자산에 대해서도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대만달러는 아시아 통화들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파이낸셜 타임즈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대만 생보사들은 미국 국채보다 회사채(7000억 달러 이상)를 보유하고 있는데 환율 변동을 대비한 헤지 비율은 자산의 10~20%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달러가치 하락으로 대만 생명보험사들의 해외자산 가치가 150억~200억 달러 이상 훼손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달러 약세 흐름은 좀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원화가 크게 저평가되어 있지는 않다. 통화가치를 평가하려면 물가와 무역 규모를 감안한 실질실효환율을 살펴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실질실효환율은 해당 국가의 경제 비중과 유사하다.

전세계 경제에서 국내 경제 비중은 IMF 당시(1900~2000원 환율)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1500~1600원대) 보다는 높다. 즉 현재 경제 비중을 고려하면 원달러는 1300~1400원대가 적정하다. 달러 약세로 원화가치가 올라갈 수 있지만, 다시 1200원대로 내려갈 가능성은 낮다. 

아시아 통화가치 상승이 주식시장에 악재는 아니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주식 매도 압력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과거 미국 달러 약세는 미국보다 유럽 또는 중국 등 신흥국 경제가 좋을 때 나타났다.

반면 올해 미국 달러 약세는 미국이 아닌 지역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트럼프 정책에 따른 부작용 때문이다. 이 경우 달러 약세는 새로운 안전자산을 찾는 과정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변동성이 높고 경기에 민감한 주식보다 안정적인 채권에 대해 더 관심을 둘 것으로 보인다. 

달러를 잠시 대신할 수 있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사실을 주식시장에 적용할 수 있다. ‘채권’스러운 업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통신·유틸리티·필수소비 같은 업종들이다. 실제로 올해 국내 증시에서 조선/방산 업종을 제외하면 안정적인 업종들의 주가가 강했다. 

한마디로 ‘마라라고 합의’는 없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자산들 입장에서는 회생의 기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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