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함용일 자본시장·회계 부원장이 자본시장 변화와 혁신을 위한 그간의 성과 및 향후 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이해선 기자]
28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함용일 자본시장·회계 부원장이 자본시장 변화와 혁신을 위한 그간의 성과 및 향후 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이해선 기자]

금융감독원이 국내 주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감독 메시지를 전달하는 ‘CEO 레터’ 제도를 본격화했다. 경영진의 책임을 분명히 묻고 조직 차원의 실질적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판단이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28일 여의도 본원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기존 형식적 행정지도에서 벗어나 CEO와 직접 소통하는 실질적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CEO 레터는 함 부원장이 직접 작성해 금융회사 대표이사에게 종이 문서 형태로 전달된다. 이날 네 번째 레터가 발송됐으며, 기존 공문 방식보다 직설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함 부원장은 “기존 문서는 하급 부서에서 형식적으로 처리되기 일쑤였지만, 레터는 CEO가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부 CEO는 레터 수신 직후 내부 점검을 지시하기도 했다는 게 함 부원장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발송된 레터는 △해외 대체투자 리스크 관리 △부동산신탁 리스크 관리 실패 △채무구조조정 체계 미비 △전산사고 대응 미흡 등 네 가지 이슈를 다뤘다. 각 사안에 대해 문제 진단, 개선 방향, 우수 사례까지 포함해 구체적으로 전달됐다.

그는 “사장 책상에 레터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조직의 움직임이 달라지게 하겠다는 것이 의도”라며 “단순 경고가 아닌, 명확한 지적과 실천 가능한 대안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향후 CEO 레터를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감독기관 문서를 시장과 공유하는 방식에서 착안한 것으로, 시장 전반의 경각심을 높이고 선제적 리스크 대응을 유도하겠다는 복안이다.

함 부원장은 “많은 사고는 경영진의 무관심, 조직 내 통제 실패에서 시작된다”며 “CEO 레터는 책임의 시작점을 분명히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잘한 회사는 인정하고, 미흡한 회사는 개선을 요구하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브리핑은 함 부원장의 임기 내 마지막 공식석상으로, 자본시장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는 “자본시장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며 “형식적 성장이 아닌, 의사결정 구조의 균형과 거래 공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물적분할, 이중상장, 유상증자 등으로 인한 일반 주주의 불만을 언급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 최근 논란이 된 사모펀드(PEF) 관련 검사 확대 방침과 함께, 향후 공시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 협의도 예고했다.

그는 일본 시장을 언급하며 “거래소와 기업 간의 긴밀한 소통, 언론의 감시가 시장 선진화의 원동력”이라며 “밸류업 전략, 지배구조 개선 등은 정권과 무관하게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금감원은 입법권은 없지만 현장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며 “기업, 투자자, 언론이 각자 역할을 다할 때 자본시장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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