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출처=진명갑 기자]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출처=진명갑 기자]

[필라델피아(미국)=진명갑 기자] 미국 조선업 쇠락의 상징 중 하나였던 필리조선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부실기업에서 이제는 ‘한미 조선산업 협력’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완성할 중요한 조각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현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한화人’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한화오션이 지난 2024년 12월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이후 곧장 미국으로 달려와 최신 기술력을 이식하고 시스템을 뿌리내리는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화오션은 단순히 미국의 부실 조선소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한다. 한화의 미래 비전은 물론 한국의 조선산업에 새로운 역사를 쓸 주요 거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깔려있다.

<EBN 산업경제>는 필리조선소를 이끄는 이종무 소장, 자동화 및 설비 담당 이학주 책임, 현장 인력 교육을 맡은 이상욱 책임을 만나 현장의 온도를 직접 들었다.

이종무 필리조선소장 [출처=한화오션]
이종무 필리조선소장 [출처=한화오션]

■ “인수 가치 충분,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것” – 이종무 필리조선소장

“한화오션은 1년에 40척 이상 건조하지만, 필리조선소는 지난 20년간 32척 건조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인수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이종무 한화오션 필리조선소장은 필리조선소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재 연간 건조 능력은 1.5척에 불과하지만 성장 기회는 충분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한화필리조선소는 10년 내 연간 10척 이상의 선박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4번 도크에서 연간 4척 생산이 가능하며, 이를 5번 도크에 적용하여 8척 생산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미국 해군 프로젝트를 주목하고 있다. 한화필리조선소는 미국 해군의 전투지원함 건조 프로젝트 입찰 참여를 준비중이다.

그러나 이 상무는 이런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결국 조선소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현재 필리조선소에는 약 1500명의 인력이 있다. 한화는 이를 향후 3000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핵심 전략은 ‘지역 기반 채용’이다.

이 소장은 "현지에서 채용해야 이탈이 없고, 지역사회로부터의 지지도 받을 수 있다”며 “우리는 초보자를 빠르게 숙련공으로 만드는 노하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소 내에는 자체 훈련소도 마련했다. 연간 200명의 기술자를 배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향후 5년간 1000명의 A급 용접사를 양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훈련과 성장의 선순환을 만들 것"이라며 "쇠락한 조선소가 다시 산업의 심장으로 뛰기 시작한 건, 결국 사람이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 “장비 도입 넘어, 효율 철학을 입힌다” – 이학주 자동화·설비 담당 책임

미국의 조선소는 여전히 수작업 중심이다. 일부분 자동화 설비를 운영하고 있지만 가동률이 낮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필리조선소를 한화오션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자동화 기술을 전파하며 첨단 조선소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 비효율 현장에 한국식 자동화를 이식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학주 자동화·설비 담당 책임이다. 한화오션에서 파견된 베테랑 기술자인 그는 필리조선소의 생산 자동화 전반을 맡고 있다.

이학주 책임은 필리조선소로 파견됐을 때 첫 인상에 대해 “수동으로 하는 작업이 많았고, 생산이 활발하게 돌아가지 않고 비효율적인 작업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에 이 책임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퀵윈(Quick Win)’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직접 공수한 용접기를 도입했다. 이후 작업 효율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이 책임은 "한국에서 가져온 용접기 30대를 우선 도입했다"며 "기존 미국 장비는 전류·전압이 낮아 작업에 제한이 많았지만, 한국 장비는 두꺼운 철판도 한 번에 용접할 수 있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날도 이 책임은 현지 직원들에게 향후 도입을 위한 캐리지 용접기 시연을 진행했다. 시연을 본 현지 직원들은 “뷰티풀 머신” “나이스하다” “굉장히 효율적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책임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제는 단순히 장비를 들여오는 게 아니다”며 “설비의 언어, 작업 방식, 철학까지 이식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익숙했던 수작업 관행을 기술로 바꾸고, 그 안에 한국식 조선 시스템의 논리를 하나씩 심는 일이다. 필리조선소의 변화는 바로 그 작은 장비 한 대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상욱 한화오션 책임이 EBN 산업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진명갑 기자]
이상욱 한화오션 책임이 EBN 산업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진명갑 기자]

■ “표준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 이상욱 현장교육 담당 책임

장비 도입 외에도 표준화 작업도 한창이었다.

이상욱 책임은 필리조선소의 현장 인력 교육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조선소에 파견돼 현지 직원들과도 가장 가깝게 지내며 업무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소통하며 일상을 함께 하고 있다.

단순한 교육자를 넘어 ‘한화오션’이라는 이름에 대한 신뢰를 현장에 뿌리내리겠다는 포부다.

필리조선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현장의 가장 큰 약점으로 ‘표준의 부재’를 꼽았다.

그는 “이전까지 필리조선소는 대체적으로 표준화보다는 개인들의 경험에 많이 의존했다”며 “그래서 표준화와 일관화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라 “생산 일정을 맞추기 위한 기초 체력을 세우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소에서는 표준화와 일관성은 중요한 자산이다. 수주 받은 선박을 일관된 작업을 통해 진행해야 정해진 납기에 선박을 인도할 수 있다. 예상외 변수로 공정의 차질이 발생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바탕 역시 표준화된 작업이기 때문이다.

조선소에서 ‘표준’은 단순한 매뉴얼 그 이상이다. 수주한 선박을 정해진 납기 안에 인도하기 위해서는 각 공정이 일관된 기준에 따라 진행돼야 하며, 돌발 상황이 생기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도 감지된다.

이상욱 책임은 “한화 인수 이전까지만 해도 설비 투자가 부족했고, 팬데믹 이후 수주가 줄면서 직원들 사이에 고용 불안감이 컸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한화오션의 과감한 설비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고용불안의 분위기는 해소됐다”고 했다.

이상욱 책임(오른쪽)과 현지 직원들이 한화오션 작업복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한화오션]
이상욱 책임(오른쪽)과 현지 직원들이 한화오션 작업복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한화오션]

이런 노력은 조금씩 변화를 이끌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업복'이다. 직원들이 너도나도 한글이 들어간 한화오션의 작업복을 구해달라고 요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국 '조선 DNA'가 스며들고 있는 셈이다.

그는 “단순한 유니폼이 아니라, ‘한화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에 현장에서는 직원들의 작업복에 영어 이름과 함께 한글 이름도 함께 새기는 방식이 도입됐다.

작업복은 단지 작업 효율을 높이는 옷이 아니라, 문화적 장벽을 허물고 정체성을 공유하는 징표로 작용하고 있다. 필리조선소라는 ‘현지 공장’에 한국 조선 DNA가 스며드는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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