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환 유진투자증권 글로벌매크로팀장.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글로벌매크로팀장.

7월말 이후 글로벌 증시 상승세는 약해졌다. 공교롭게도 8월 1일 트럼프 관세 유예 기간 이후주식시장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 지난 4월 이후 글로벌 증시가 나름 가파르게 회복하기도 했다. 쉬어 가도 이상하지 않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연준의 금리인하 여부와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로벌 증시를 움직이는 열쇠는 AI 투자와 그 속에 숨겨진 기업들의 숨은 체력에 달려 있다. 

8월 1일 발표된 미국 고용보고서의 충격(5~6월 동안 25.8만명 일자리 하향 조정) 후 미국 경기 전망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관세와 이민 등 트럼프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그럼에도 미국 주가가 4월 9일 이후 가파르게 회복한 것은 순전히 Tech 투자 덕분이다.

챗GPT가 공개된 2023년 이후 미국 경제는 실질 기준으로 6.5% 성장했다. 동 기간 AI 데이타센터 등 정보처리장치 투자는 22% 올랐다. AI 투자에 의존한 미국 성장세는 더 심해졌다. 지난 1년 동안 미국 경제가 실질 기준 2% 성장하는 동안 정보처리장치 투자는 19%나 증가했다

Tech 투자,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대규모 언어모델 개발은 궁극적으로 기업들과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과 주가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닷컴버블 당시 늘어났던 인터넷과 네트워크 투자는 이후 미국 경제와 기업들의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그러나 주가는 2000년을 기점으로 급락했고, 2001년 미국 경기는 완만하나마 침체로 진입한 바 있다. 

지금 AI의 성장성에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다. 지난 2~3주 동안 진행된 미국 기업실적 시즌에서도 미국 주요 빅테크 업체들의 실적은 양호했다. 무엇보다 AI투자에 적극적인 업체들과 AI 투자 효과를 언급한 기업들의 주가는 좋았다. 그러나 AI 투자 속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바로 기업들의 잉여현금흐름(영업 현금흐름-설비투자)이다. 

아직 2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엔비디아와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덜 적극적인 애플과 테슬라를 제외한 M7, 즉 아마존·알파벳·MSFT·메타 순이익은 증가 추세다. 2023년 4분기 이후 매출은 25%, 순이익은 45% 늘었다. 반면 동기간 동안 잉여현금흐름은 39% 감소했다. 데이타센터 투자에 대규모 현금을 쏟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금 소진에도 AI 기업들의 주가는 양호하다. 투자가 결국 매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덕분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잉여현금흐름이 너무 빨리 감소하면, 당연히 AI투자가 지금의 속도로 늘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AI투자로 인해 M7의 비즈니스 모델과 기업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원래 미국 Tech기업들은 대규모 자산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정된 자산 속에서도 높은 이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빅테크 기업들은 점차 자산집약적인 기업들로 전환되고 있다. 갈수록 현금흐름이 중요하고, 경기에도 민감해질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팔란티어다. 팔란티어는 S&P500 기업들 가운데 가장 고평가된 기업들 중 하나다. 12개월 예상 실적 기준으로도 PER이 230배가 넘는다. 미국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는 국면에서도 팔란티어 매출 증가율은 지난 2분기 48%yoy를 기록했다. 잉여현금흐름은 5.3억 달러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팔란티어 인력은 3900명이다. 인당 매출은 135만 달러인데, 아마존(41만 달러), MSFT(108만달러)보다 많다. 비싸도 동일한 자산·인력 대비 매출이 많고, 현금흐름이 양호한 기업들에 대한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금리인하 보다 AI 투자의 지속 여부와 각 기업의 효율성이다. 미국 경제에서 AI를 비롯한 Tech 투자 비중이 닷컴버블 만큼 높아졌다는 징후는 없다. 하지만 AI투자에 현금이 소진되고 있다. 절대 지칠 것 같지 않은 미국 Tech 기업들도 조금은 쉬어 갈 시점에 접근 중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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