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이 시장의 정서와 충돌하고 있다. 개편안 발표 하루 만에 증시에서 116조 원이 증발했고, 시장은 혼란과 불신으로 반응했다. 증세냐, 유인이냐. 정부는 양손에 다른 신호를 쥐고 있었고, 시장은 혼선 속에 방향을 잃었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대주주 기준을 다시 10억 원으로 환원하고, 고배당 기업에 대해 분리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겉으로는 형평성과 유인의 조화를 꾀한 듯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얼마나 바꿨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향을 보였는가’에 있다. 시장은 수치를 보지 않는다. 신호를 본다. 시장이 이번 개편에서 읽고 반영한 신호는 투자가 아닌 ‘증세’였다.
실제로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환원, 증권거래세 인상, 법인세 구간 상향 등 다층적 증세 항목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반면 유인책이라 소개된 고배당 분리과세는 기준이 까다롭고 실효세율도 기대 이하였다. 그 결과는 “신뢰 상실”이다.
정책이 정의로울 수 있으려면 현실과도 호응해야 한다. 그러나 10억 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사람을 ‘대주주’로 간주하겠다는 발상은,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4억 원을 넘는 시대에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대주주 기준은 자산총액만으로 낙인을 찍는 방식이 아니라, 지분율과 보유 기간, 실질 지배력 등을 종합 고려한 정교한 체계여야 한다. 지금의 방식은 형평을 말하면서도 정작 형평의 감각을 잃은 조세다.
정부는 고배당 기업 주주에 대해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분리과세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배당 유인을 회복하고 자본시장의 정상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시장은 “기준이 너무 복잡하고 세율도 높다”며 시큰둥했다. 세수 감소가 아닌 세원 구조 개편이라는 장기적 전략이라지만, 단기적으로 신뢰를 얻지 못한 개편이 장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문제는 세율이 아니다. 유인 설계다. 정책은 숫자의 조합이 아니라 기대와 행동을 설계하는 구조여야 한다. 지금처럼 양도소득세를 강화하고, 거래세까지 올려놓고, 분리과세로 달래려 해봤자 시장은 ‘혼합된 신호’에 더 큰 불안을 느낀다. 실제로 개편안 발표 후 하루 만에 증발한 시총은 116조 원. 이는 정부가 별도로 편성한 1차 소비쿠폰 예산과 같은 규모다. 한 손으로 돈을 쥐여주고, 다른 손으로 빼앗는 형국이다.
정책은 단순히 정의로울 것이 아니라 유효해야 한다. 숫자의 형평성은 제도적 정당성을 줄 수 있지만,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철저히 “행동의 기대”다. 정책이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어떻게 작동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정부가 진정으로 자본시장 정상화와 조세 기반 확장을 원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보다 정교한 유인 설계다. 이번 세제 개편안의 고배당 분리과세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넓은 적용 대상을 설정하고, 실효세율을 현실화하며, 장기 보유와 배당 확대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시장은 억지보다 유인을 따른다.
정책의 설득력은 숫자가 아니라 방향성에서 나온다. 지금은 증세가 아니라, 투자자와 기업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시장 유인 설계’로 조세정책을 재정비해야 할 때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