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대산공장 전경 [출처=LG화학]](https://cdn.ebn.co.kr/news/photo/202508/1676099_692659_3032.jpeg)
정부가 '선(先) 자구노력 후(後) 지원' 원칙에 기반한 석유화학 구조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기업들 간 눈치 싸움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가 최대 370만 톤(t)에 달하는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 감축 목표와 함께 올 연말을 자구안 제출 데드라인으로 내걸었지만 정작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빠진 데다 향후 업황 회복도 불투명해 기업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
27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국내 10대 석화 업체들이 맺은 자율협약에는 △270~370만 톤 규모 NCC 감축 △고부가·친환경 제품 전환 △지역경제 영향 최소 노력 방안 등이 담겼다.
내년 완공을 앞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를 더해 국내 전체 나프타분해설비(NCC) 용량 1470만 톤의 18~25%(270만~370만 톤)를 기업이 자율 감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LG화학을 비롯해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한화토탈 △대한유화 △한화솔루션 △DL케미칼 △GS칼텍스 △HD현대케미칼 △에쓰오일 등이 참여한다.
다만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부재한 만큼 기업 간 협의만으로 매각이나 설비 통폐합 같은 근본적인 구조 재편은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생산설비 통합을 위해 기업들이 테이블에 앉았지만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5대 5로 합작해 설립한 HD현대케미칼 사례가 대표적이다. HD현대케미칼이 롯데케미칼의 NCC 시설을 인수해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두고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고용, 현금 보상 등의 부문에서 발생한 이견차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대를 모았던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간 통합도 뚜렷한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SK측이 대한유화에 흡수합병과 설비 통합 운용 등을 제안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삼성증권은 "2023년 이후 석유화학 매각을 타진하는 기업들이 늘어났으나 매각 가치에 대한 매수·매도업체 간 이견으로 거래 성사된 사례가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자율협약에서의 공급감축에 앞서 산업단지별 설비 통합 논의가 진행 중인데 향후 폐쇄까지 단행해야 할 설비에 대한 가치평가에 대한 이견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으로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지면서 자칫 상호 간 불신을 자극하고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죄수의 딜레마'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구조조정은 정부가 NCC 감축 할당량을 직접 정해주는 것이 아닌 기업들의 자율적인 협약에 따라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에틸렌 생산설비는 여수와 대산, 울산 단지에 집중됐다. 여수는 롯데케미칼, LG화학, 여천NCC 등 대형 석유화학사가 한 데 모였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보유한 만큼 감축 부담이 크다.
대산은 HD현대케미칼과 LG화학, 한화토탈에너지스 등이 존재해 정유사와 화학사 간 수직통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울산의 경우 작은 규모 업체들이 독립적으로 설비를 운영 중으로 설비통합 압력이 큰 환경이다.
신한투자증권은 "구조조정은 시작되었지만 막상 자기 살을 도려내는 과정은 고통이 크다"며 "경제학 게임이론 중 죄수의 딜레마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구조조정은) 적절한 보상과 지원이 없다면 협약을 이탈할 유인이 존재한다"며 "기업들도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감축에 적극적이지 않다면 구조조정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회에서도 석유화학 산업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 대책이 ‘민간 자율 통폐합’ 수준에 머물렀다고 지적하면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과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별법에는 △연구개발·설비투자 보조금 △전기요금 감면 △환경규제·회계기준 특례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기업결합 규제 완화 △전문인력 양성 △근로자 보호 △지역경제 충격 완화 △사업재편 과정 단기 유동성 지원 등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