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피트니스 센터나 필라테스를 많이들 이용합니다.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6개월이나 1년 이용료를 현금으로 선지급하면 더 큰 할인혜택을 제공한다고 하고, 각종 추첨행사 등 프로모션도 활발히 진행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푼 기대를 안고 목돈을 넣고 회원권을 발급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헬스장 관장이 돌연 운영을 중단하고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사업주가 갑자기 헬스장 운영을 중단하고 잠적해 버리는 이른바 ‘헬스장 먹튀’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이렇게 헬스장 먹튀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의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소비장 입장에서 사업주가 상당한 기간을 거쳐 준비한 야반도주를 감행하는데 이에 대한 대처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먹튀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 3월까지 접수된 헬스장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1만104건에 이릅니다. 피해자가 고소하거나 소비자원에 신고하는 비율이 10% 미만으로 짐작되기에 일각에서는 실제 피해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봅니다. 피해 금액이 소액이라 피해자들이 조용히 넘어가려 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우선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 소득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은 수사기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업자등록이 존속하고 있는 상태여야 피해 구제신청 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국세청에 폐업신고를 하였다면 소비자원은 도움을 주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는 신용카드 항변권 행사입니다. 신용카드 할부 계약이 취소되거나 해지되면 소비자는 신용카드사에 남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권리인 항변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다만 항변권을 행사하기 위한 요건이 있습니다. 신용카드 전체 결제 금액이 20만원 이상이어야 하고, 할부기간이 3개월 이상이여야만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현금결제는 해당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기죄로 형사고소나 민사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사기죄는 운영 능력이 없거나 폐업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회원권을 판매하여 회원의 재산을 편취하였다는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으며, 사업주가 잠적하면 주소 파악도 힘들지만, 소비자가 민사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손해배상금을 받기까지는 강제집행이나 사업주의 자력 등에서 커다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증보험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보증보험은 사업자의 계약 불이행으로 소비자가 입을 수 있는 손해를 보험사가 대신해 보상하는 형태의 손해 보험을 말합니다. 갑작스럽게 헬스장이 폐업을 하게 되더라도 소비자는 일정 부분 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헬스장 먹튀'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인 것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5월부터 개정된 '체력단력장(헬스장) 이용 표준약관'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개정 표준약관은 헬스장을 휴업·폐업하려는 사업자가 예정일 14일 전까진 해당 사실을 이용자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이는 사전 고지 없이 갑작스럽게 휴·폐업해 장기 이용권을 구매한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마련한 '먹튀 헬스장' 방지 장치입니다. 약관은 사업자가 영업을 중단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보증보험에 가입한 경우 이용자에게 종류와 보장 내용을 고지하도록 했습니다. 퍼스널 트레이닝(이른바, PT)도 표준약관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공정위의 개정 표준약관에는 강제성이 없습니다. 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업주에게 어떠한 제재가 가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만큼이나 사업주 입장에서도 보증보험은 생소할 뿐입니다.
지난해 10월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체육관 돌연 폐업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3개월 이상 이용료를 미리 받은 체육시설업자는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체육시설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작년 11월 19일 전체회의에 상정했지만 전문위원으로부터 ‘추가 논의를 통해 규제의 필요성, 종목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검토의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법적 공백을 이용한 사기행각 때문에 ‘헬스장 먹튀’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입법 개선과 함께 법원도 ‘헬스장 먹튀'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합니다. 피해자의 다수성을 고려하여 양형 기준을 강화하여 '방망이 처벌' 관행이 개선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