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이 정기 임원 인사 시점을 두 달 앞당겨 전격적인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단행했다. [출처=오픈AI]](https://cdn.ebn.co.kr/news/photo/202510/1680954_698311_275.jpg)
LG생활건강이 정기 임원 인사 시점을 두 달 앞당겨 전격적인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단행했다. 신임 CEO는 로레알, 메디힐, AHC 등에서 30년 이상 경력을 쌓은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 이선주 사장이다.
LG생활건강이 외부 출신 CEO를 영입한 것은 2005년 차석용 전 부회장 이후 20년 만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원포인트 인사’를 두고 실적 및 주가 부진, 시장 점유율 하락에 직면한 LG생활건강이 쇄신의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LG생활건강에 따르면 회사는 오는 11월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이선주 사장을 공식 선임할 예정이다. 이정애 현 CEO는 임기 만료를 6개월 앞두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화장품 사업이 2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고, 신흥 뷰티 기업 에이피알에 시가총액까지 역전당한 상황이 CEO 교체의 직접적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올해 2분기 LG생활건강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5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 줄었으며 매출액도 1조6049억원으로 8.8% 감소했다. 특히 화장품 부문 매출이 6046억원(-19%)으로 줄며 16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2004년 4분기 이후 약 2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2020년 12월 160만원대에 달하던 주가 역시 최근 28만원 선으로 주저앉았다. 이를 두고 정한솔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전통 유통채널 구조조정과 중국 럭셔리 화장품 수요 둔화로 단기적 실적 악화와 주가 하락은 불가피하다”며 “중국 사업 정상화 여부와 북미·일본 시장에서의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화장품 사업 구조조정과 글로벌 시장 리밸런싱이다. 회사 화장품 매출의 35%가 면세·방문판매 등 전통 채널에, 중국향 매출의 80%가 ‘더후’에 쏠려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중국 내수와 럭셔리 선호 둔화가 겹치며 성장 엔진이 식은 상태라서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중국 내 판매처·브랜드를 줄이며 중국 의존도를 20%대로 낮췄지만, LG생활건강의 지난해 기준 중국 매출 비중은 45%로 여전히 높았다.
지난 수년간 북미 진출을 목표로 ‘에이본’, ‘피지오겔’, ‘유시몰’, ‘더크렘샵’ 등을 인수하며 포트폴리오 확장도 시도했지만, K뷰티의 글로벌 인디 브랜드 성장세와는 엇박자를 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북미·일본 시장에서 성과를 낸 ‘빌리프·CNP’는 규모가 작아 사업부 반등의 동력으로는 부족한 상태이기도 하다.
이에 새로 부임하는 이선주 사장은 글로벌 브랜드를 육성한 경험을 바탕으로 북미 시장 공략과 차세대 성장 브랜드 발굴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로레알코리아 시절 ‘키엘’을 한국 글로벌 매출 2위로 끌어올린 데다, 이후 엘엔피코스메틱과 카버코리아(유니레버 자회사)에서 메디힐·AHC의 해외 진출을 주도한 이력이 있는 만큼 업계에서도 이번 인사가 뷰티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전략임을 직감하고 있다.
관건은 이선주 체제 ‘첫 100일’간 펼쳐질 사업 전략의 속도와 명확성이다. 일단 더후의 프리미엄 전략을 유지하면서 수익성을 회복하고, 북미에서 더페이스샵·빌리프·CNP로 외형을 키우는 ‘투 트랙’이 유력하다. 증권가에서도 면세 공급량 조절과 가격 정상화로 단기 매출은 흔들릴 수 있으나 채널 개선과 지역 다변화가 이뤄져야 주가 반등이 가능하다는 관측이 많다.
자회사 재편 및 운용법도 관심사다. 현재 회사는 음료 포트폴리오 슬림화를 위해 ‘봉봉’과 ‘코코팜’을 보유한 자회사 해태htb 매각을 검토 중이다. 코카콜라 보틀링 사업은 유지하되 국내 편중과 원가 부담으로 수익성이 흔들린 음료부문 구조를 가볍게 하겠다는 계산이다.
앞서 LG전자로부터 넘겨받은 뷰티 디바이스 ‘프라엘’과의 시너지를 통해 기기-화장품 결합 모델을 본격화할 필요도 있다. 에이피알이 ‘메디큐브’로 구축한 반복 구매 구조가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만큼, ‘가전 관점’ 판매에서 벗어난 피부 솔루션 패키지 전략이 요구된다.
업계 관계자는 “LG생활건강이 두 달 앞당긴 인사 승부수를 실적으로 증명할지가 흔들린 ‘K뷰티 빅2’ 구도의 향방을 가를 시험대”라며 “중국·면세 쏠림을 줄이고, 북미·일본·동남아에서 재성장 축을 세우며, 기기-화장품 결합 모델로 반복 구매를 만든다면 반등의 조건은 갖춰진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뷰티 시장은 단순 영업 방식이 아니라 고도의 브랜딩 전략이 필요한 시대다. LG생활건강이 근본적 구조 개선을 이루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뷰티 사업 구조조정에 따른 단기 손실은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시장 다변화를 통해 개선 가능성이 남았다”고 전망했다.
LG생활건강은 과거 18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차석용 전 부회장 시절 ‘차석용 매직’으로 17년 연속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K뷰티의 맏형으로 군림했던 회사다. 그러나 중국 의존 전략이 한계에 부딪히며 연속 성장 신화는 깨졌다. 이번 CEO 교체는 과거 영광을 되찾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자, 글로벌 무대에서 다시 도약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