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한반도 역사에서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우호와 적대, 교류와 단절이 교차하며 수천 년을 함께 걸어왔다.
최근 온라인에는 반중의 언어가 넘치고, 거리에서는 반중 시위가 이어진다. 반중(反中)을 넘어 ‘혐중(혐오+중국)’의 시대다. 마치 ‘오랑캐’라 부르며 중국을 배척하던 냉소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 혐오라는 안경은 변화하는 중국을 보지 못하게 한다. 중국을 왜곡하고,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그 사이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중국을 보지 못했다. 혐오의 시선은 중국을 왜곡하고,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본보 기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한 한·중 언론인 교류사업을 통해 중국 산업 현장 일선을 둘러보며 그들의 변화를 목격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중국은 더 이상 값싼 인건비만을 내세우던 낙후한 경쟁자가 아니었다.
QR코드 결제는 이미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고, 로봇은 호텔과 공항에서 사람을 대신한다. 공장에서는 5G와 AI가 생산라인을 실시간으로 제어하고, 해상풍력 산업단지는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바람을 에너지로 바꾸며 산업을 키운다.
산업과 기술, 그리고 사회의 변화 속도가 한국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과거의 중국’에 머물러 있다. 싸구려, 모방, 오염, 공산당 통제라는 낡은 이미지가 인식의 틀을 지배한다.
냉소와 혐오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왜곡하고, 경쟁자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중국의 변화를 과소평가해 왔다. 고려 말 명나라의 부상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조선은 청의 개혁을 ‘오랑캐의 풍속’이라 무시했다. 결국 외면은 뒤처짐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한국 역시 다르지 않다. 기술 패권의 지형이 빠르게 이동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여전히 서구의 시각으로 중국을 해석하며 스스로 시야를 좁히고 있다.
중국의 산업 현장을 직접 취재하며 느낀 것은 분명했다. 그들의 변화는 ‘보여주기식 개발’이 아니라 ‘시장 중심 혁신’이라는 점이다. 실험은 연구실이 아니라 시장에서 이뤄지고, 성공과 실패의 데이터는 즉시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기술 상용화의 속도로 경쟁하는 시대, 중국은 이미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혐오가 아닌 분석, 감정이 아닌 이해다.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하거나 폄하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응하고 협력하며 경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변화의 본질은 늘 현장에 있다. 그 현장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데이터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어야 한다.
냉소는 시야를 좁히지만, 관찰은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역사를 통해 배웠다. 제대로 보지 못한 나라가 결국 뒤처진다는 사실을. 지금이 바로 혐오의 안경을 벗고, 냉정한 시선으로 중국을 바라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