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생성 이미지.[출처=오픈AI]](https://cdn.ebn.co.kr/news/photo/202510/1683275_700927_22.jpg)
국내 보험사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금융사를 인수하며 ‘보험 수출 시대’ 포문을 열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형 한국경제가 금융업으로까지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한국 보험산업이 내수 한계를 돌파하고 글로벌 무대에서 몸집을 키우려는 전략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DB손해보험의 미국 진출이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DB손보는 지난 9월 26일 미국 특화보험사 포테그라그룹(PTG Holdings, Inc.)의 발행주식 100%를 16억5000만 달러(약 2조3000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거래는 국내 손해보험 업계의 해외 인수합병(M&A) 가운데 최대 규모로, 단순한 영업 진출을 넘어 현지 보험회사를 통째로 품은 첫 사례다.
포테그라는 보증·보상 전문보험을 중심으로 미국 내 중소기업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올려온 특화보험기업이다.
DB손보는 이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세계 최대 보험시장인 미국에 직접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DB손보 관계자는 “이번 인수는 단기 수익보다 글로벌 포트폴리오 구축에 초점을 둔 전략적 투자”라며 “현지 상품 노하우와 리스크관리 역량을 접목해 북미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생명보험사들도 잇달아 해외 M&A에 나서고 있다. 앞서 한화생명은 지난 7월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클리어링’의 지분 75%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국내 보험사가 미국 증권시장에 진출한 첫 사례다.
뉴욕을 거점으로 한 벨로시티는 2024년말 기준 총자산 약 12억 달러(약 1조6700억원)를 보유한 증권사다. 최근 3년간(2022~2024년) 매출 기준 연평균 성장률 25%를 기록하는 등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벨로시티 인수는 국내 보험사가 미 증권시장에 진출한 최초 케이스다. 한화생명은 이번 인수로 수익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북미 자본시장으로의 전략적 확장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흥국생명 역시 운용사 인수를 검토하며 투자 네트워크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국내 보험산업 전반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저성장·저금리·고령화’ 3중 압박에 대한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국내 시장의 보험 보장성 상품 포화와 수익성 한계 속에서, 보험사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해외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보험사들의 인수합병 및 지분취득 흐름은 단순한 ‘해외진출’이 아니라 ‘보험산업의 수출화’라는 구조적 변화로 읽힌다. 과거 제조업이 공장을 세워 제품을 수출했다면, 이제 보험사들은 자본과 기술,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수출한다.
한국 보험산업이 쌓아온 IT 기반의 언더라이팅(위험심사) 역량과 데이터 분석력, 디지털 보험 플랫폼 기술은 이미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DB손보의 포테그라 인수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지 법인 설립이나 지점 확장이 아닌 ‘완전 인수’ 방식은, 한국 보험사가 글로벌 시장의 규제·리스크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한화·흥국생명의 자산운용사 인수 검토 역시 ‘국내 자본의 글로벌 운용’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보를 한국 보험산업의 체질 개선 과정으로 본다.
한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보험사들의 해외 M&A는 금리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동시에, 장기적인 자산·부채 구조를 글로벌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게 한다”며 “국내 시장 중심의 성장모델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앞으로는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실적을 좌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업계의 해외 자산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보험사의 해외 투자자산은 2023년 말 기준 약 85조7070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 같은 추세는 ‘보험업의 글로벌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임을 보여준다고 업계에서는 조심스럽게 희망하고 있다.
결국 ‘보험도 수출하는 시대’라는 말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한국 보험사들이 해외 시장에서 현지 기업을 인수하고, 상품·리스크관리 노하우를 수출하며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이 세계를 무대로 성장하던 1980~1990년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금융산업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면서 "DB손보의 미국 M&A는 그 출발점이자 상징이고 한국 보험산업의 다음 10년은 더 이상 ‘내수 경쟁’이 아닌 ‘글로벌 경쟁’의 무대 위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