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오픈AI]
[출처= 오픈AI]

서희건설이 임원 횡령과 김건희 여사 고가 목걸이 제공 의혹 등 각종 논란으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 들어가면서 주식 거래가 3개월째 멈춰섰다. 그러나 회사가 남의 주식과 채권에 투자해 쌓아 올린 단순투자 유가증권 규모는 여전히 수천억원대다. 악재 직격탄을 맞은 뒤 주가가 급락하고 거래가 막히면서 소액주주들은 손실을 확정하지도,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묶여 있는 사이, 서희건설은 테슬라·엔비디아·글로벌 럭셔리주 등 외부 종목에 대한 공격적 운용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서희건설의 주식 거래는 현재 정지된 상태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8월 서희건설이 현직 임원의 13억7500만원 상당 횡령 혐의를 인정하는 공시를 내고,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고가 목걸이 제공 의혹으로 특별검사 수사까지 받게 되자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했다고 보고 주식 매매를 정지시켰다. 서희건설은 거래 재개를 위한 개선계획서를 제출한 상태이지만, 지난 6월 2000원대를 돌파했던 주가는 거래가 정지된 이후 1623원에 3개월째 멈춰 있다.

서희건설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평가손실이 난 채 발이 묶여 있지만, 정작 서희건설은 남의 주식과 채권 투자에서 상당한 규모의 자산을 유지하고 있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서희건설이 단순투자 목적으로 보유한 국내외 상장주식 장부가액은 2025년 상반기 말 기준 946억원이다. 작년 말 62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반년 새 300억원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여기에 채권·펀드 등을 합친 단순투자 유가증권(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 장부가액은 2279억원에 이른다. 같은 시기 자본총계(1조781억원)를 기준으로 하면 자기자본의 약 20%를 시장성 금융자산으로 운용하는 구조다. 시공능력평가 20위권 건설사 가운데 본업이나 계열사와 직접 연관이 없는 단순투자 목적 유가증권을 이 정도 규모로 굴리는 곳은 서희건설이 사실상 유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이 같은 공격적 자산 운용은 코로나19 이후 본격화됐다. 2019년 말 122억원에 그쳤던 투자주식 장부가액은 2020년 '동학개미' 장세를 타고 1000억원 안팎까지 불어났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네이버·카카오 등 이른바 언택트 대표주에 더해 미국 'FAAMG'(페이스북·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와 전기차 업체 테슬라까지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성과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서희건설은 2020년 단순투자 유가증권에서 230억원의 평가이익(FVPL)을 기록했다. 같은 해 당기순이익 1248억원 가운데 약 18%가 금융투자에서 나온 것이다. 2021년에는 SK하이닉스를 추가하고 테슬라·애플 비중을 키우면서 평가이익이 341억원까지 늘었다. 1년 새 50% 가까이 증가한 규모로, 당시 순이익의 4분의 1이 주식·채권 투자에서 발생했다.

시장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포트폴리오도 빠르게 조정됐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변동성이 커지자 서희건설은 네이버·카카오·SK하이닉스 지분을 정리하고 미국 빅테크 비중도 줄였다. 2023년에는 삼성전자·테슬라 비중을 다시 조금씩 늘리며 핵심 종목 중심으로 재편했고, 2024년에는 인공지능(AI) 열풍을 반영해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 쪽으로 무게를 옮겼다. 엔비디아 공급망에서 비켜선 삼성전자는 전량 매도하고, 대신 LVMH·에르메스 등 글로벌 럭셔리주와 AI 기반 데이터 분석기업 팔란티어, 미 국채 등으로 투자 대상을 넓혔다.

올해 3분기에는 주식과 채권 등 위험자산 전반이 동반 상승하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가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엔비디아·테슬라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국내 대형주를 함께 들고 있는 서희건설의 평가이익은 반기보고서에 반영된 수준보다 더 확대됐을 가능성이 크다. 상장적격성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회사 장부상 단순투자 유가증권 가치는 오히려 불어났을 수 있다는 의미다.

[출처= 다음금융]
[출처= 네이버금융]

단순투자 유가증권이 회사 자산의 일부이고, 증가했다면 그 역시 서희건설 투자자들에게도 희소식이지만, 업계에서는 서희건설의 이런 구조를 놓고 "투자 성과와 책임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가 투자한 자산이 커지는 동안 정작 자사 주주는 거래정지와 상장심사 리스크를 떠안은 채 시장 밖에 서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투자 자산의 확대가 곧바로 주가나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투자 포트폴리오와 손익 구조에 대한 정보는 공시를 꼼꼼히 살펴야만 확인할 수 있고, 경영진이 이와 관련한 중장기 전략이나 주주환원 계획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 한 소액주주 입장에선 '장부 속 숫자' 이상으로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사가 여유 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지만, 그와 동시에 지배구조와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의 주식으로 수익을 내는 능력에 비해 자기 회사 주주를 대하는 태도는 부족하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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