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바라는 것은 규제 철폐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규제의 재설계’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제도가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그 피해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출처=오픈AI]](https://cdn.ebn.co.kr/news/photo/202511/1686398_704418_1155.png)
국내 유통시장이 ‘시간의 굴레’에 갇혔다.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과 달리 제도는 여전히 2010년대 초반의 규제 틀 안에 머물러 있다. 내수 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한계에 다다른 유통업계는 최근 정치권이 주도하는 낡은 규제 연장과 신규 제약 논의 속에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이달 23일 일몰을 앞둔 기업형슈퍼마켓(SSM) 개점 지역 규제의 연장안을 추진 중이다. 대형마트보다 규모는 작지만 생활권에 밀착된 SSM은 전통시장 인근 입점 제한, 심야영업 금지, 월 2회 의무휴업 등 대형마트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이 제도는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지난 2011년 도입됐지만 10년 넘게 실효성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 대형 유통점이 상권을 잠식한다는 비판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쿠팡·컬리·네이버 등 이커머스 플랫폼이 생활 인프라를 대체하는 사이, 오프라인 점포는 인건비와 재고 부담에 시달리며 줄폐점을 거듭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대형마트와 SSM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전락한 상황인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10년 전 논리로 영업을 제한하고 있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소비자 편익을 저해하고 산업 전체를 후퇴시킨다”고 꼬집었다.
실제 산업연구원이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조정한 지역의 주변상권 매출이 비규제 지역보다 3.1% 높게 나타났다. 규제의 목적이었던 ‘소상공인 보호’가 더 이상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통업계는 마트 규제가 오히려 골목상권 소비를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이커머스업계에도 새로운 규제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근로자 건강권 보장을 이유로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심야배송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해당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쿠팡의 ‘로켓배송’, 컬리의 ‘샛별배송’ 등 핵심 서비스의 존립이 흔들릴 수 있다.
여기에 지난해 ‘티메프’ 미지급 사태 이후 온라인 플랫폼 정산 시스템을 규제해야 한다는 법안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결국 한국 유통산업은 ‘낡은 규제와 새 제약이 공존하는 기형적 구조’로 치닫고 있다. 오프라인은 여전히 과거의 족쇄를 벗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온라인은 신산업의 명분 아래 또 다른 규제 리스크를 맞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통 규제를 과거의 보호 논리에서 미래의 혁신 논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시장은 대형마트 대 소상공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대 온라인 경쟁 구도로 재편됐다”며 “정치적 논리가 아닌 산업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면 소비자 편익과 시장 활력이 동시에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