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 본격적인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구조조정·사업 재편·M&A(인수합병) 과정에 놓인 가운데 그 중심에는 총수 3·4세로 불리는 ‘상속자들’이 서 있다. 이들의 한마디, 한 번의 투자나 철수 결정은 수만 명의 일자리와 골목상권, 상장사 주주가치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유통가 상속자들] 기획은 유통·식품 기업들의 차세대 경영자를 둘러싼 지분 구조, 직책, 실제 역할과 성과, 향후 승계 시나리오를 면밀히 추적한다. 단순히 ‘누가 후계자인가’를 넘어 한국 유통 산업의 다음 10년을 어떤 전략과 리더십 철학으로 이끌어갈 인물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전병우 삼양식품 전무 [출처=삼양라운드스퀘어]](https://cdn.ebn.co.kr/news/photo/202511/1688236_706694_5729.jpg)
삼양식품 오너가 3세인 전병우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상무에서 전무로 직급을 올리면서 그룹 내 차세대 리더로서 입지를 더욱 굳혔다. 빠른 승진만큼이나 요구되는 책임도 막중하다. 단일 제품 성공에 기대는 구조를 넘어서 ‘포스트 불닭’ 전략과 신사업의 성장성을 입증해야 하는 실질적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초고속 승진…25세 입사, 6년 만에 전무로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양라운드스퀘어가 최근 발표한 2026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전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입사 6년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전 전무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의 장남이자 고(故) 전중윤 창업주의 손자다. 1994년생으로 올해 만 31세다.
전 전무는 2019년 10월 25세의 나이로 삼양식품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했다. 입사 이듬해인 2020년 6월 이사로 승진하면서 임원 타이틀을 달았고 2023년 10월 상무에 오른 뒤 이번 정기 인사에서 전무로 발탁됐다. 입사 6년, 임원 승진 2년 만에 이룬 성과다.
삼양식품은 이번 승진과 관련해 “전 전무가 불닭 브랜드의 글로벌 사업 총괄과 해외 공장 설립, 브랜드 마케팅 확대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점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불닭볶음면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매출 성장과 전략적 성과가 이번 인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다.
업계에선 이번 승진을 단순한 오너 일가 우대 인사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다. C레벨 중심의 경영 체계 개편과 맞물린 승진으로 본격적인 경영 참여와 책임 확대가 동시에 요구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전면 배치’라는 얘기다.
◆‘불닭 글로벌화’ 프로젝트 실무 전반 주도
전 전무가 주도한 대표 성과는 단연 ‘불닭 글로벌화’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을 앞세워 지난 몇 년간 해외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실제 전 전무는 해당 프로젝트의 실무를 총괄해왔다.
그는 특히 중국 자싱공장 설립을 주도했다. 중국 내 안정적인 생산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공급 속도를 높인 전략은 글로벌 수요 증가 대응에 기여를 했다. 코첼라 등 대형 글로벌 뮤직 페스티벌과 연계한 마케팅도 그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 이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MZ세대 소비자 확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올해 삼양식품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1%까지 늘어났다. 올해 1~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1조7141억원으로 전년 대비 37.2%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3849억원으로 이미 전년도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해외 매출도 지난해 연간 해외 매출(1조3359억원)을 웃돈다. 삼양식품의 글로벌 전략이 불닭 브랜드를 기반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습이다.
◆삼양1963·맵탱으로 브랜드 스펙트럼 확장
전 전무는 현재 삼양식품 최고운영책임자(COO)로 C레벨 조직을 총괄하고 있다. 이밖에 CMO(최고마케팅책임자)와 헬스케어BU장,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 등 직책을 겸임 중이다. 그룹 전반의 미래사업과 핵심 브랜드 전략을 사실상 전담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삼양식품이 선보인 프리미엄 라면 ‘삼양1963’의 기획과 마케팅을 총괄하면서 과거 ‘우지 파동’으로 실추된 브랜드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다. 해당 제품은 한국 최초 라면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복원하는 상징적 시도로 스토리텔링을 통해 과거의 오해를 바로잡고 신뢰를 회복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실제 유튜브 광고는 공개 2주 만에 조회 수 60만 회를 넘기면서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국물라면 신제품 ‘맵탱’도 전 전무가 아래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출시 후 월평균 250만~300만 개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냈지만, 불닭과 같은 메가 브랜드로 안착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전 전무가 이끄는 또 다른 축은 헬스케어BU다. 삼양식품은 지난 2023년 기존 신사업본부를 개편해 헬스케어BU를 신설하고 건강기능식품과 단백질 간편식, 식물성 식품 등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개발 중이다.
◆종합식품기업 도약 위한 전략적 리더십 시험대
첫 브랜드였던 ‘잭앤펄스’(현 펄스랩)는 리브랜딩과 제품군 재조정을 거치며 보다 명확한 방향성을 찾아가는 단계에 있다. 아직은 매출 규모가 크지 않지만, 이번 분기보고서 기준 뉴트리션사업부 매출은 21억6000만 원으로 집계되면서 시장 진입 초기 단계에서 점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양식품은 식물성 기반의 건강식품 시장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브랜드 정교화와 시장 적합성 강화를 통해 점진적인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관건은 전 전무가 단일 브랜드의 성공을 넘어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도약을 이끌 수 있느냐다. 전 전무는 불닭 브랜드의 후광에 안주하지 않고, 프리미엄 라면 ‘삼양1963’, 식물성 헬스케어 브랜드 ‘펄스랩’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이는 일시적 인기 제품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삼양라운드스퀘어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전병우 전무가 그간 쌓아온 글로벌 전략 실행력과 브랜드 리더십에 대한 내부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앞으로도 불닭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성장세를 지속 강화하는 한편 신사업과 생산 인프라 확장 등을 통해 삼양식품의 지속가능한 미래 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경영 체계를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