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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과 이를 억제하기 위한 주요국의 봉쇄·격리조치가 글로벌 수요와 공급에 부정적 충격을 초래하면서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25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 및 주요국 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대면접촉 기피 및 불확실성 증대 등에 따른 수요 감소와 함께 국제유가의 큰 폭 하락이 물가하방요인으로 작용하는 반면, 이동제한, 글로벌 공급망 약화 등에 따른 생산 차질은 물가의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정책의 경우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한 가계·기업 지원정책은 물가 하방압력을 완화시키지만, 교육·의료관련 복지정책 및 간접세 인하 등은 일시적 물가하락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요인들의 물가에 대한 실제 영향은 코로나 확산의 시기와 정도, 봉쇄조치 강도 등의 차이로 인해 국가별로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는 만큼, 한은은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의 물가동향을 주요국과의 비교를 통해 점검했다.

우리나라는 2월 중순 이후 확산된 코로나19를 조기에 통제하면서 경제활동의 위축이 비교적 완만했던 반면 주요 선진국의 경우 3월 중순 이후 코로나의 급속한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전면 봉쇄조치를 시행하면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대부분 국가에서 생산 차질 등에 따른 상방요인보다는 수요 감소 등에 따른 하방압력이 더 크게 나타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둔화됐다.

요인별로는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에너지가격 하락이 물가상승률 둔화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다만, 국가별로는 코로나19 확산 정도와 이에 대응한 봉쇄조치 및 정부 정책 등의 차이로 인해 단기적인 물가흐름이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전면 봉쇄조치가 시행된 주요 선진국은 식료품 등 생필품가격이 생산 차질, 비축수요 증가 등으로 오름세가 상당폭 확대되면서 물가상승률 둔화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봉쇄조치로 인한 사업체의 영업중단 등으로 가격조사가 어려워진 점도 서비스 물가의 하방압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봉쇄조치가 시행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생필품가격 상승이 크지 않은 가운데, 고교무상교육 확대, 개별소비세 인하 등의 정부정책이 추가적인 물가하방요인으로 작용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동제한 기간중 국가별 봉쇄 정도와 식료품 및 서비스 물가 변동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봉쇄조치가 강할수록 식료품가격의 상승폭과 서비스 물가 하락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주요 선진국의 전문가 서베이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단기 기대 인플레이션(향후 1년)이 최근의 물가흐름을 반영하여 상당폭 하락하였으나 장기 기대인플레이션(5년앞)은 상승과 하락이 혼재된 가운데 그 폭이 제한적이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반인의 향후 물가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은 증대했다. 미국의 경우 개별 응답자의 미래 물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응답자간 불일치 정도도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보다 긴 시계에서 보면, 코로나19 이후 추세 인플레이션 방향은 불확실성이 높으나 예비적 저축 유인 증대, 부채상환 부담 증가, 디지털 경제 가속화 등에 따른 하방압력으로 저인플레이션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글로벌 유동성 누증, 글로벌 공급망 약화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상승압력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비적 저축 유인 증대, 부채비율 상승 등에 따른 수요 둔화와 온라인 거래 성장의 가속화, 생산의 자동화·무인화 등은 추세 인플레이션 하락요인으로 꼽힌다.

대규모 감염병 확산이나 경제위기 이후 민간은 예비적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 있으며, 부채수준이 높을 경우 부채상환을 위해 소비나 투자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민간부문 부채비율이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운데, 코로나19 확산과정에서 민간부문 대출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비대면 온라인 거래의 성장은 유통단계의 거래비용 절감을 통해, 기업의 재택근무 확산 및 자동화·무인화 투자 확대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물가 하방압력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유동성 누증, 글로벌 공급망 약화 등은 추세 인플레이션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겠으나 당분간 그 정도는 강하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국의 확장적 통화 및 재정 정책으로 급격히 늘어난 글로벌 유동성은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경우 물가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미 연준은 최근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무제한 양적완화와 더불어 민간을 대상으로 직접 공급하는 유동성 규모를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최근의 확장적 정책은 재난구호 성격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공급망(Global Value Chain)의 약화는 생산비용 상승,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 확대 등을 유발하여 물가 상승압력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GVC 참여도가 높아 추세 인플레이션이 글로벌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급격하게 확대할 정도로 단기간에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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