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판 가격을 둘러싼 조선업계와 철강업계의 샅바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을 더 낮춰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철강업계는 무작정 하락 폭을 키울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후판 가격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올해 안에 마무리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조선업계와 철강업계는 하반기 조선용 후판 가격을 정하기 위해 막바지 협상 중이다. 양측은 후판 가격을 인하하는 방향으로 가닥 잡았었지만, 이후 시황이 변동되자 인하폭을 두고 샅바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판은 배를 만들 때 들어가는 6mm 이상 두께의 철판이다. 선박 건조 원가의 약 20%를 차지해 조선업계에게 후판 가격 협상은 가장 큰 연례행사로 인식된다.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 인하에 방점을 찍고 있다. 철광석 가격이 하락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200달러(약 26만원)를 웃돌았던 철광석 가격이 현재 절반가량 떨어졌다는 걸 고려하면 인하 폭을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철광석 가격은 떨어졌는데 후판 가격은 작년 상·하반기 각각 톤당 10만원, 40만원 인상한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톤당 10만원 올랐다. 이에 따라 톤당 60만원 선이었던 후판 가격은 현재 120만원 선으로 약 두 배 가량 뛰었다.
철강업계는 철광석 가격도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 방역 정책을 완화함과 동시에 자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자금 조달을 위해 지불 유예(모라토리엄) 조치를 해제하고 재융자 등을 허용하고 있다.
중국 부동산시장이 살아날 움직임을 보이자 철광석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조금씩 커졌다.
실제로 철광석 가격은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항 수입 철광석은 지난 달 톤당 80달러(약 10만원)선까지 추락했으나, 중국의 수요 증가 기대감으로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현재 95달러(약 12만원)선까지 회복했다.
철강업계는 원료인 철광석 가격 이외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러 강세로 인한 원재료 구매가 상승, 전기료 인상 등을 제품 가격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 주요 후판 공급업체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각각 포항제철소 1후판공장 가동 중단, 노조 게릴라 파업으로 인한 후판 생산 차질 사태를 겪었다. 공급이 줄었으므로 후판 가격 인하 폭을 키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양 업계는 실적 개선을 위해서는 후판 인하 폭을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가져가야 하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은 올 3분기에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하는데 성공했으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영업손실을 겪고 있다.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격 하락 폭을 키워야 한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조선용 후판을 생산하는 회사들 또한 지난 상반기부터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요 감소 등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0% 하락했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후판을 덜 싸게 팔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하반기 후판 가격을 둘러싼 눈치싸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후판 가격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언제 끝날 지는 장담할 수 없다"며 "협상이 치열한 만큼 1~2달 더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