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마을의 영주인 레오프릭 백작은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걷으며 폭정을 일삼았다. 그의 젊은 아내 고디바(Godiva) 부인은 불쌍한 백성들을 대신해 남편에게 세금을 줄여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백작은 부인에게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청을 들어주겠다”며 극단적인 조건을 제시한다.
당시 중세 여성은 뭇사람에게 알몸을 드러내거나 절대적 존재인 남편에게 함부로 맞서다간 사회적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그러나 고디바 부인은 고통받는 백성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백작 남편에게 맞서기로 한다. 약속한 날이 밝자 고디바 부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 한복판으로 나선다.
그때 고디바 부인 앞에 기묘한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에 사람이 보이지 않고 적막해진 것. 백성들이 고디바 부인의 숭고한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외출을 금지하고 창문 커튼을 내려 절대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단합했기 때문이었다.
고디바 부인의 알몸 행진에 마음을 움직인 백작 남편은 결국 백성들의 세금을 줄여주고 선정을 베풀게 된다. 마을은 활기가 넘치고 번영하게 된다.
자신의 안위보다 고통받는 백성을 먼저 생각하여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고디바 부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이다. 그래서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높은 수준의 윤리적 행동에는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과 응원이 병렬적으로 함께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회 고위층 인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개별 조직 내에서 구현되는 것이 바로 Tone at the Top이다. 이는 상부의 어조(語調), 최고경영진의 의지, 관리자의 솔선수범과 모범적 행동 등을 의미한다.
Tone at the Top은 고디바 부인의 희생에 대한 백성들의 치열한 응원처럼 직원들에게 낙수효과를 일으킨다. 소위 최고경영진으로부터 전달되는 가치와 태도, 의지와 행동 방식이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Tone at the Top은 조직 내에 건전한 조직 문화와 윤리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고경영진이 높은 수준의 윤리준법 의식을 유지하면 직원들도 따라서 바람직한 윤리준법 의식을 견지하게 된다.
반면에 최고경영진이 윤리에 무관심하고 공정과 상식을 무시하면서 단기 실적과 사적인 영달과 개념 없는 고집에만 집착하는 등 Tone at the Top이 훼손될 경우, 경영진의 영(令)이 서지 않아 직원들의 업무 수행 및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직원들의 윤리의식이 약화되면서 조직 내에 부정을 저지르기 쉬운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사장이 골프 접대와 명품 뇌물을 받는데 일개 사원인 내가 골프 접대와 명품 뇌물을 받는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식으로 비윤리적 분위기가 만연해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리더십 전문가인 린다 피셔 톤슨(Linda Fisher Thornton)에 의하면 부하직원은 심리적으로 '리더를 따르려는 열망'에 의지하여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윤리적인 행동 △타인에 대한 봉사 행위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모습 등의 모범을 보일 때, 부하직원들은 롤 모델(Role model)을 다른 곳에서 찾지 않고 바로 상사를 롤 모델로 삼고 이에 동화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 수백 명보다 상사 한 명의 윤리적 모범 행동이 조직 전체의 윤리문화 확산에 그만큼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경영진 스스로 윤리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 투명한 의사 결정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면 최고경영진이 직접 챙기면서 즉각적인 대응 방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Tone at the Top 개념은 2001년 미국 굴지의 대기업인 Enron, WorldCom 두 회사의 대규모 회계 부정 스캔들 이후 본격 등장했다. 미국은 기업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2002년에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SOX 법(Sarbanes-Oxley Act)을 만들었다. 이때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조직의 윤리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모범을 보이고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Tone at the Top' 개념이 본격 대두된 것이다.
내부통제에 관한 국제적 전문기구인 COSO는 내부통제 프레임워크의 ‘통제환경’ 요소에서 Tone at the Top이 내부통제의 초석이므로, 최고경영진은 바람직한 경영철학 및 업무스타일과 윤리준법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조직 내에 내부통제시스템이 아무리 잘 구축되어 있어도 최고경영진이 이를 우회하면 정상적인 내부통제 활동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ISO37001(부패방지 경영시스템)과 ISO37301(규범준수 경영시스템)에서도 각각 ‘5.1. 리더십과 의지 표명’ 파트에서 Tone at the Top이 조직의 부패 방지 및 준법 경영의 필수 요소임을 밝히고 있고, UNGC(United Nations Global Compact)가 공시한 ESG 국제협약의 ‘거버넌스 원칙 제10장’에서도 부패 방지를 위해 Tone at the Top의 견고한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Tone at the Top이 붕괴되고 있는 듯한 현상을 종종 보게 된다.
어느 고위층 인사는 대전 모 방송국 대표 시절에 법인카드를 유용한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되었다 하고, 모 시중은행의 전 은행장은 친인척에 대한 거액 부당대출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모 중앙행정기관의 전 청장은 입찰 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하고, 모 체육협회는 회장의 횡령 및 배임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 제약회사 대표는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고, 모 전기회사의 전 회장은 횡령 및 허위 공시로 구속 기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그들 조직의 내부감사는 도대체 뭘 했을까. 과연 Tone at the Top을 평가했을까. 평가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대처했을까.
내부감사는 리스크에 기반한 독립적이며 객관적인 검증, 조언, 통찰 및 예측을 실시하여 조직의 가치를 증진시키고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따라서 내부감사는 최고경영진과의 인터뷰, 브레인스토밍, 설문조사 등의 방법으로 조직의 Tone at the Top 리스크를 적절히 평가해야 한다. 평가 결과 문제점이 있는 경우에는 최고경영진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이사회에 보고하여 개선 조치를 해야 한다.
예컨대, 최고경영진이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부당 사용한 경우, 내부감사는 윤리규정에 따라 최고경영진에게 시정 의견을 개진하고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최고경영진과 이사회 차원에서 시정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관련 당국에 제보하거나 법적인 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 그래서 내부감사 차원에서 부당한 Tone at the Top을 견제하여 조직 가치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
내부감사가 Tone at the Top을 평가할 때는 조직의 비전과 목표, 경영철학 및 업무스타일, 윤리준법 의식, 소통과 협력 상황, 리더십 역량, 조직문화 개선 상태, 성과와 보상의 효과성, 법규 위반 행위에 대한 대응 태도, 퇴직자의 의견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의 작심 발언은 어쩌면 공정과 상식이 붕괴되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Tone at the Top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견제자로서의 피맺힌 절규였는지도 모른다.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는 말이 있다. 조직의 퇴폐는 상층부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상층부가 썩지 않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각 조직에서는 Tone at the Top에 역량을 집중하여 윤리준법 문화를 바로 세우고 조직의 부정을 선제적으로 예방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