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EBN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EBN

4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운용했던 은행에서 금융투자사로 머니무브가 감지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를 시작으로 연금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각오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의 실시 전후로 증권사 창구를 통해 고객들의 퇴직연금 이전 문의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기존 운용상품을 매도(해지)하지 않고 퇴직연금 사업자만 바꿔 이전할 수 있는 제도다. 그동안 퇴직연금 계좌를 타 사업자로 이전하려면 기존 상품의 해지(현금화)에 따른 비용(중도해지 금리 등), 펀드 환매 후 재매수 과정에서 금융시장 상황 변화로 인한 손실(기회비용) 등이 발생해 사업자 이전이 어려웠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로 은행에 퇴직연금 계좌를 가지고 있던 고객들도 증권사로 옮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382조4000억원으로 연간 수익률은 5.26%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적립금 규모는 13.8% 증가했고, 수익률은 5.24%p나 뛰었다. 연간 수익률 중 원리금보장형 수익률은 4.08%, 실적배당형 수익률은 13.27%로 차이가 컸다. 적립금 증가율도 금융투자사가 17.5%로 은행 증가율(15.9%)을 넘어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으로 증권사간 이전 문의는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은행에서 증권으로 이전에 대한 문의는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작년 은행 퇴직연금 적립 규모는 198조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은행 퇴직연금 상품 라인업은 안정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금융투자사업자보다 리스크 관리에도 엄격해 금융투자사 대비 상품 라인업이 다양하지 않다.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상품만 봐도 3분기 말 기준 은행 디폴트옵션 상품은 85개, 금융투자사 디폴트옵션 상품은 107건으로 차이가 난다. 수익률에서도 은행 디폴트옵션 상품 중 최고 수익률이 1년 23%, 6개월 6% 수준이라면, 금융투자사 상품 중에서는 최고 수익률이 1년 26%, 6개월 8%로 격차를 보였다.

다양한 상품 라인업과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고객들은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를 통해 금융투자사로 옮길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여전히 퇴직연금은 안정적인 투자 성향이 강하지만 TDF나 BF 등을 통해 안정성과 수익률을 동시에 추구하는 고객들의 관심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라며 “로보어드바이저, AI 등의 고도화된 서비스를 적용하거나 이벤트 등을 통해 고객 접점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퇴직연금 머니무브를 통한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라는 선순환 구조에도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4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주식 비중은 4.4% 수준으로, 대부분이 현금성 자산으로 추정된다. 이중 국내주식 비중은 1.6% 미만으로 주식시장 유입 금액은 6조3000억원 가량이다.

국내 주식시장은 최근 들어 해외 주식시장 등을 자금이 유출되면서 유동성이 위축되고 변동성이 큰 상황이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등으로 대규모 자금이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유입된다면 국내 증시 체력도 증진되고, 수익률 제고에 따른 국민 자산 증식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 국민연금의 기금 소진 우려가 계속되고 있는데, 퇴직연금의 자산이 실적배당형 등으로 이동하면서 전체 수익률이 개선되면 국민연금 기금 감소기 국내 자본시장의 충격 완충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시장을 지탱하는 양질의 수급 주체로서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상호보완 관계가 재조명돼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비엔(EBN)뉴스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