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1조원 이상 순매도 한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1조원 이상 순매도 한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

비상계엄 사태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 표결 무산 등 정치적 리스크가 이어지면서 1400만 개인투자자들이 투자 허리띠를 졸라맸다. 변동성이 큰 현 상황에서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것보다 투자를 유보하면서 안정적인 자금 운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후 주식시장이 열린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개인 투자자들은 총 2조3193억원을 순매도했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4~5일 개인 투자자들은 변동성을 매수 기회로 보고 순매수에 나섰지만, 탄핵 정국으로 사태가 확대되고 주말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표결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불확실성의 장기화 우려에 매도세로 돌아섰다. 특히 지난 9일에는 하루 만에 1조2022억원을 순매도하는 ‘패닉셀’까지 이루어졌다. 개인 투자자들이 지난 4거래일간 순매도한 규모는 2조8133억원으로 3조원에 육박한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뺀 자금은 미국 시장으로도 큰 이동은 없었다. 지난 3~1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지수가 1% 상승하는 등 강세를 보였지만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4일 미국 증권 매수 규모는 13억9685만 달러에서 10일 11억1682만 달러로 다소 감소했다.

높은 원·달러 환율이 개인 투자자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최근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겪는 고환율이다.

고환율에 미국 주식을 매입했을 때 주식에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더라도 환차손에 의에 수익률이 줄어들 수 있으며, 수익을 거두더라도 손실이 날 수도 있다.

이에 개인 투자자들은 투자를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 대기자금 격인 투자자예탁금 규모는 지난 3일 49조8987억원에서 10일 52조5129억원으로 늘었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도 늘고 있다. CMA는 하루만 맡겨도 예적금보다 높은 금리를 받는 대표적인 단기 금융상품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CMA 잔고는 3일 71조6829억원에서 지난 10일 73조5556억원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개인 투자자들의 소극적 투자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탄핵 정국에서 투자자들을 자본시장으로 유인할 긍정적인 요소가 없고, 국내 투자자들이 투자에 나선다고 해도 환율 부담을 감내하고서라도 미국 증시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개인 투자자는 “환율 때문에 미국 주식 투자를 유보했는데 간밤 나스닥 지수가 사상 최초로 2만선을 돌파하고 테슬라 주가도 엄청 뛰어 후회했다”며 “솔직히 어디에 투자를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미장(미국 주식시장)이 답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원 KB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약세, 달러 강세, 개인과 외국인 자금 이탈 등 국내 증시 부담 요인이 여전해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안이 통가됐지만 배당소득 저율·분리과세는 제외됐는데 ISA 세제 지원 확대 방안도 제외됐다”며 “국민 자산 형성에 기여하고 개인의 증시 참여 확대를 위한 마중물을 기대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국내 증시에 비우호적인 개인 투심 회복은 조금 더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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