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도 무죄 부당합병 회계부정 인정 안돼."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가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총 19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전부 무죄를 내렸다. 1심과 같은 결과다.
꼬박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 세대를 가를 만한 시간이자, 이 회장에 채워진 사법 족쇄가 풀리는데 걸린 기간이다.
검찰의 칼날이 처음 겨눠진 것은 2016년 11월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던 '국정농단 사태' 시기, 정치 논리와 여론 재판에 휩쓸린 이 회장은 결국 두 차례에 걸쳐 560일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이후 검찰은 국정농단 사태가 잠잠해진 시점인 2020년, 이번엔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수사에 들어간 검찰은 그해 9월 부정 거래와 시세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이 회장과 삼성 임원들을 기소했다.
새로 시작된 제약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법정에 출석한 횟수만도 100회가 넘는다. 법정에 끌려다닌 탓에 해외 현장 경영 대신 국내에 묶여 로펌과 함께 대응 전략을 짜야했던 횟수도 부지기수 였을 터다.
이 기간 동안 '삼성'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삼성이 아니었다. 글로벌 빅테크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는가 하면, HBM(고대역폭메모리) 개발 지연과 인공지능(AI) 시대 대비를 제대로 못 했다는 우려와 따끔한 질책도 받았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시장에서는 TSMC와 인텔 등에 밀리고 있다. 도약이 절실한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무죄 판결은 법적 논란을 넘어 삼성 경영 전반에 걸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여러 부담을 덜어내고 미래 사업 발굴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이 회장의 시간이다. AI 협력을 위해 전일(4일) 열린 샘 올트먼 CEO, 이 회장, 손정의 회장의 3자 회동은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공식 행보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됐다.
앞으로 이 회장의 일정은 신규 먹거리인 로봇·전장·바이오는 물론, 반도체·AI·6G 네트워크·배터리 등 주요 사업 관련 스케쥴로 빼곡히 채워질 것이다. 인수합병(M&A) 추진과 투자는 따라 붙는 덤이다.
삼성 경쟁력의 출발점은 '초격차 DNA'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우위를 넘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기업 문화와 전략을 의미한다. 삼성은 과거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이 전략을 통해 경쟁사와 격차를 크게 벌려왔다. 글로벌 시장 선도를 위해 초격차 전략을 유지·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구심점 복원이 필요한 때다.
다만 이번 무죄 판결로 법적 리스크는 해소됐지만, 당장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삼성은 HBM 투자 실기로 지난해 반도체 실적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뒤쳐지기도 했다. 신사업 발굴에 집중하며 기술력을 따라잡아야 하는 숙제가 남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미래전략실 같은 컨트롤타워 부활이 거론되기도 한다. 당장 오는 3월 주총에서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할지도 관심사다.
이 회장이 그간 강조해온 '뉴 삼성'의 비전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혁신 사업 모델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와의 관계 설정, 주주 및 사회적 신뢰 확보에도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할 것이다.
삼성의 새로운 10년을 결정할 중요한 변곡점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번 무죄 판결이 경영권 안정을 넘어 삼성의 진정한 도약을 위한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