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EBN AI 그래픽 DB]](https://cdn.ebn.co.kr/news/photo/202502/1653346_666098_347.jpg)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논할 때 ‘경영권 승계’와 ‘상속세’는 핵심 이슈다. 하지만 한국의 상속세 부담은 OECD 최고 수준으로, 기업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승계의 덫’이 되고 있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상속세 최고세율이 27.1%인 데 비해, 한국은 50%에 달하며, 최대주주 할증까지 적용될 경우 실질 세율이 60%까지 치솟는다. 이는 후계 구도를 흔들고,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EBN산업경제는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승계 리스크를 조명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국내 밀폐용기 1위 회사 창업주인 김준일 회장은 상속세 부담을 이유로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 회사를 1조원에 매각(락앤락). 창업주 김태조 회장은 상속세 부담을 이유로 승계를 포기하고 신세계에 경영권을 5000억원에 매각(까사미아). 국내 신발갑피 2위 회사 창업주인 정호태 대표는 상속세 부담으로 승계를 포기하고 VIG파트너스에 회사를 2200억원에 매각(유영산업).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상속세가 가업승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가 창업주의 ‘경영 의지’를 꺾으면서 우리나라는 사실상 ‘100년 이상 장수기업’ 불모지가 된 것이다. 상속세 부담은 상속인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기업을 성장시키기보단 매각 후 부동산 등 비생산적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욕구를 증대시켜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업력 20년 이상 소멸기업 증가…100년 이상 장수기업 10개사에 불과
![통계청 기업생멸행정통계 [출처=한국무역협회]](https://cdn.ebn.co.kr/news/photo/202502/1653346_666094_297.jpg)
27일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100년 이상 업력을 가진 장수기업은 국내에 10개사(2020년 기준)에 불과하다. 반면 주요국의 100년 이상 장수기업은 수만개에 이른다. 일본은 3만3079개사, 미국 1만2780개사, 독일 1만73개사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화 시점을 고려해 ‘60년 기업’으로 기준을 낮춰도 600개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소멸기업 수 증가도 문제다. 최근 전체 소멸기업 수 대비 업력 20년 이상 소멸기업 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기업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소멸된 제조기업 3만8899개사 중 업력 20년 이상 기업은 2784개사로 7.2%를 차지했다. 2018년은 2897개사(7.4%), 2019년 3248개사(8.2%), 2020년 3465개사(9.4%)로 매년 증가세다.
지난 2023년에는 전체 소멸기업 3만7411개사 중 업력 20년 이상 기업은 3966개사로 10%를 돌파했다. 장수기업의 기로에 서 있는 업력 20년 이상 기업들이 과도한 상속세 등 영속성을 제한하는 경영 여건 속에 폐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2008년부터 가업승계 지원제도가 운영 중이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업상속 공제제도는 가업 영위 기간에 따라 상송세 과세가액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한다. 예컨대 가업 영위 기간이 10년 이상이면 300억원, 20년 이상 400억원, 30년 이상 600억원 한도로 공제한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 기업의 가업상속 공제 활용 건수는 연간 평균 111건으로 공제금액은 3165억원에 불과하다. 가업승계에 대한 증여세 특례 제도 이용 실적도 평균 255건 수준에 그쳤다.
반면 독일, 영국 등 주요국의 가업승계공제 제도는 활성화돼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독일의 가업승계 공제 건수는 평균 1만1079건으로 우리나라의 99배에 달한다. 가업승계 공제 금액은 6조1280억원으로 우리나라 대비 약 20배가량 높다. 같은 기간 영국의 가업승계 공제 건수는 연간 평균 2583건, 공제금액은 2조8889억원으로 집계됐다.
■ 정치권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상속세 개편안’
![상속세 개편안이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여당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40%로 낮추는 방안을, 야당은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모습. [출처=연합]](https://cdn.ebn.co.kr/news/photo/202502/1653346_666104_565.jpg)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의 영속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상속세 개편안이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 모두 상속세 개편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상속세율 인하와 과표 구간 조정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공제 금액을 현행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속세법 개정안을 추진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올해 상속세 개편 카드를 먼저 꺼내는 건 야당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속세 최고세율은 그대로 두되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안을 제시했다. 일괄공제 기준을 기존 5억원에서 8억원으로 상향하고, 배우자공제는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이다. 이는 총 18억원까지 세금을 감면 혜택을 줘서 수도권 중산층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집을 팔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즉각 반발했다. 가업승계 부담 완화를 위한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는 논의는 없이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만 적용하는 건 사실상 조기 대선을 의식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추고 최대 주주 보유 주식 할증평가 제도 폐지, 가업상속 공제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7.1%)보다 두 배가량 높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023년 10월 실시한 ‘우리 상속세제에 대한 3040 CEO 인식조사(업력 3년 이상·연간 매출액 20억원 이상 30~40대 벤처·스타트업 대표 140명)’ 결과 응답자의 90% 이상이 우리나라의 높은 상속세율이 기업인의 기업 하려는 의지와 도전정신을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코리아 디스카운트(우리나라 기업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기업 주가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를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과도한 상속제가 지목됐다.
이들 중 68.6%는 현재 경영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 ‘경영 부담 등을 이유로 자녀에게 승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자녀에게 승계할 계획이다’라고 답한 응답률은 20.7%에 그쳤다. 상속세율 인하와 공제 확대 등으로 상속세 부담이 줄어들 경우 기업의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 등에 미치는 영향에 물은 결과 ‘도움 된다’는 응답이 69.3%로 나타났다. ‘영향 없다’는 2.9%로 집계됐다.
■ 전문가 “유산세 과세 방식 유산취득세로 바뀌어야”
![우리 상속세제에 대한 3040 CEO 인식조사 결과 [출처=한국경영자총협회]](https://cdn.ebn.co.kr/news/photo/202502/1653346_666100_404.jpg)
현행 상속세의 맹점으로 ‘유산세’ 방식의 과세가 거론된다. 유산세란 피상속인(사망인)의 재산 총액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OECD 대부분의 국가(24개국 중 20개국)들은 상속인이 실제 물려받는 재산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과세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유산세 방식으로 상속세를 과세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덴마크뿐이다.
전문가들도 현행 상속세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창업주가 돌아가시면 상속 재산을 자식에게 우선 물려주고 이를 바탕으로 세금을 매기는 게 맞다”면서 “전체 유산 중 국가가 먼저 떼어가는 건 문제가 있다. 유산취득세로만 바뀌어도 현실적으로 상속세가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조 명예교수는 상속 개념을 계주(릴레이)와 비교해 설명했다. 그는 “상속은 일종의 계주”라며 “사망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유산이 흘러가야 하는데 상속세가 두려워서 기업을 파는 건, 국가가 창업주가 평생 일궈온 것을 다음 세대로 연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야당이 제시한 상속세 개편안이 핵심을 짚지 못한 개악법이란 입장을 밝혔다. 최 명예교수는 “총 18억원까지 상속세를 면제해 주겠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세율 개편”이라며 “현재 기업인이 주식으로 상속할 경우 최대 세율은 60%가 되는데 세금을 내려면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주식을 팔고 회사를 넘겨주라는 얘기”면서 “2대, 3대로 넘어가면 경영권을 가실 수 없기 때문에 100년 기업이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 명예교수는 대안으로 ‘자본이득세’를 제시했다. 자본이득세는 주식에 한정해 부모가 재산을 물려줄 때는 과세하지 않고 후대가 자산을 팔아 실제 이익이 발생했을 경우 세금을 물리는 방식을 말한다.
최 명예교수는 “주식을 물려 줄 때는 미실현이익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실제 이익이 실현됐을 때 과세하는 게 맞다”면서 “주식을 처분할 때 취득가와 처분가 차액에 대해선 높은 세율을 매겨도 상관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