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前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이 국가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한 사건으로 시끄럽던 시절, 삼성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은 최 씨에게 승마 지원 등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수사 받았다. 이 회장은 재판부의 강압적 요구로 지난 2020년 1월 준법감시제도 도입 계획을 발표, 같은 해 2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탄생했다.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삼성 준감위’가 출범한 지 5년이 흘렀다. 본지는 삼성 준감위의 그간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을 짚어보는 기획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국정농단이 낳은 '기형적 감시기구' 탄생 △준법지원 탈 쓴 과잉규제 논란 △‘뉴 삼성’에 족쇄 풀어줄 때] <편집자 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가 여러 논란속에서 탄생했지만 재계에 비슷한 조직은 준감위 전에도 있었고 후에도 속속 생겼다. 명칭이 조금 다를 뿐 역할도 비슷하다. 그룹 계열사들의 준법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자문·지원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들의 성과는 기업별로 엇갈린다. 삼성 준감위에 대한 평가도 긍정론과 부정론이 혼재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보은사업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출처=한화그룹]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보은사업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출처=한화그룹]

한화그룹은 지난 2018년 7월 이홍훈 전 대법원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한화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사외 독립기구로 출범시켰다. 그룹 차원의 준법경영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한화 컴플라이언스위원회는 그룹 차원의 컴플라이언스 정책을 수립하고, 계열사의 준법경영 이행 여부 점검 및 관련 업무를 자문·지원하는 것.

한화 컴플라이언스위원회는 매년 정기회의를 통해 컴플라이언스 강연, 해외부패방지법 가이드라인 배포 및 교육 등을 진행해 임직원들의 준법의식 향상에 주력했다. 

특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컴플라이언스위원회에 힘을 실어줬다. 김 회장은 컴플라이언스위원회가 '경영기획실을 해체하라'고 건의했을 때 바로 받아들였다. 그룹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던 경영기획실을 폐지시킨 것이다. 법적 실체가 없는 경영기획실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을 수용했다. 

컴플라이언스위원회 설립 이후 계열사의 준법경영을 강화한 결과 한화 계열사들은 기업의 윤리·준법경영 관련 국제표준 인증을 연달아 획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1년 국내 방산업계 최초로 준법경영 시스템 인증(ISO 37301)을 취득했다. 

한화솔루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ISO 37301과 반부패경영 시스템 인증(ISO 37001)을 모두 획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1년 국제투명성기구의 '방산기업 반부패 지수 평가'에서 134개 기업 중 상위 12%에 해당하는 'B' 등급 획득과 함께 아시아 방산기업 중 반부패 지수 1위 기업에 올랐다. 

롯데그룹은 한화그룹보다 1년 앞선 2017년 4월 민형기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위원장으로 롯데컴플라이언스위원회(이하 롯데컴플)를 출범시켰다. 롯데컴플은 회장의 직속 기관으로 위원장 및 3인의 외부위원과 3인의 내부위원으로 구성됐다.

롯데컴플은 그룹 컴플라이언스 정책 및 계획의 수립, 계열사 컴플라이언스 활동의 점검·평가, 관리 및 지도를 담당한다. 법규 준수를 포함한 컴플라이언스 점검 등의 사항을 심의, 의결한다. 

김소영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위원장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왼쪽)가 2023년 11월 23일 첫 회동을 하고 카카오의 준법경영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출처=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김소영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위원장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왼쪽)가 2023년 11월 23일 첫 회동을 하고 카카오의 준법경영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출처=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최근엔 카카오가 준법과신뢰위원회(이하 준신위)를 2023년 12월 출범시켰다. 준신위는 김소영 전 대법원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외부 인사로 꾸려진 위원단과 각 분야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교수·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위원단으로 구성됐다. 카카오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CA협의체 안의 독립된 기구다.  

준신위는 카카오·카카오게임즈·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등 6개 협약계열사를 대상으로 준법시스템 개선 및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한 방안 연구 및 권고를 하고 있다. 준법의무 위반 사항에 대한 조사 요구 및 직접 조사와 준법 교육도 진행한다. 

카카오가 준신위를 출범시킨 때는 골목상권 침해, 문어발 확장, 계열사 중복상장 등의 논란으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특히 작년 8월에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구속 기소됐다. 김 창업자가 2023년 2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SM엔터 인수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경영권 인수를 막기 위해 SM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고정할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다. 

김 창업자는 작년 7월 23일 구속된 후 보석으로 100일 만에 풀려났다. 김 창업자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지난 14일 CA협의체 공동의장 자리를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최근 암 초기 진단을 받아 치료에 집중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그룹의 준감위 역할을 하는 기구들의 성과가 차이가 나는 것처럼 삼성 준감위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컨설팅업체 그린에토스랩의 이선경 대표는 "준감위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며 "객관적으로 기업의 준법경영 관련 의견을 듣기 위해 위원회를 만드는 시도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준감위가 출범 취지에 맞는 역할을 하기 위해선 위원회가 다양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준감위가 삼성 계열사를 제대로 감시하려면 위원회가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야 하고, 위원들이 형식적인 의견이 아닌 의미있는 의견을 내는 게 중요하다"며 "경력만으로 위원들의 시각과 면모를 다 알 순 없다. 성별과 경력을 떠나 그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준감위 역할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거세다. 준감위는 2023년 8월 삼성 계열사들의 전경련 복귀를 검토하면서 정경유착 행위가 발생할 경우 즉시 탈퇴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반발했다. 당시 전경련의 혁신안이 선언적 단계에 그쳤다는 점에서 준감위의 조건부 재가입 승인이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준감위의 역할이 상법상 의무인 준법지원인과 겹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법 제542조의 13에서는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인 주식회사는 반드시 내부통제기구인 준법지원인을 설치해야 한다. 이는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준감위와 법적 기관인 준법지원인 업무가 중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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