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우성아파트[사진=이승연 기자]
잠실 우성아파트[사진=이승연 기자]

한때 시공사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던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공사비 급등 여파로 건설사들이 몸을 사리면서, 재건축·재개발 조합들도 잇단 입찰 유찰을 피하기 위해 '컨소시엄(공동도급)' 카드를 다시 꺼내 들고 있다.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중구 신당10구역 재개발조합이 최근 진행한 시공사 입찰에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단독 응찰했으나, 경쟁 입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유찰됐다. 이 사업장은 총 6217억 원 규모로, 최고 35층, 1423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조성될 예정이다.

조합은 지난 9월부터 세 차례 입찰에 나섰지만 참여 건설사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네 번째 입찰부터 공동도급을 허용했다. 조합이 원칙적으로 기피해 온 컨소시엄을 선택한 것은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이다. 현행 제도상 두 차례 이상 입찰이 유찰되면 수의계약이 가능해지는데, 조합은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과의 수의계약 체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흐름은 서울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지난 7일 송파구 잠실우성1·2·3차(1,842가구) 재건축 시공사 선정 입찰에는 GS건설만 응찰해 유찰됐다. 이 단지 역시 앞서 지난 3월 한 차례 유찰된 바 있어, 조합은 수의계약 절차에 돌입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게 됐다. 총 공사비는 약 1조6900억원에 이른다.

강남구 개포주공6·7단지(2689가구)도 유사한 수순을 밟고 있다. 현대건설이 단독으로 응찰한 이번 재입찰도 유찰되면서, 조합은 수의계약 체결을 위한 재공고에 나설 예정이다. 방배신삼호아파트(서초구), 한남5구역(용산구) 등에서도 경쟁 입찰은 실종되고, 단독 응찰과 수의계약이 이어지고 있다.

건설사들은 최근 정비사업 수주에 따른 이익이 크지 않다고 토로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자재비, 인건비, 금융비용이 모두 올라 원가율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과거처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컨소시엄을 통해 리스크를 나누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조합은 컨소시엄을 반기지 않는다. 하자 보수나 품질 관련 문제가 발생할 경우 건설사 간 책임 소재를 가리기 분명치 않고, 공사 일정 치체 등의 문제가 반복될 수 있어서 단독 입찰 조건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불황에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사업이 표류하는 상황까지 오다보니 조합도 어느 정도 컨소시엄을 허용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조합은 단독 입찰을 선호하지만, 유찰이 반복되면 결국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며 "컨소시엄을 허용하지 않으면 건설사들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러한 흐름이 단기적인 현상이 아닌, 정비사업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공사비는 치솟고 분양가 규제는 유지되면서 건설사들이 무리한 수주 경쟁을 피하는 보수적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은 수주전이라기보다는 시공사 찾기 전쟁에 가까운 양상"이라며 "정비사업의 수익 구조가 회복되지 않는 한 공동도급 확대는 당분간 불가피한 흐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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