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에 위치한 화담숲. [출처=권영석 기자]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에 위치한 화담숲. [출처=권영석 기자]

지난 23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에 위치한 화담숲. 바깥 햇살이 따가웠지만, 숲 안은 선선했다. 빽빽한 나무들이 직사광선을 가려줘 숲속 기온이 자연스레 떨어진 덕분이다.

서울 강남에서 차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이 숲은 시민들에게 쉼터이자 도심 속 생태 명소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운영하는 수목원으로, 2013년 대중에 개방됐다. 약 16만㎡(5만 평) 부지에 43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연간 약 90만 명이 찾는 국내 대표 기업 수목원이다.

무엇보다 이 숲의 출발점에는 LG그룹 선대 회장인 고(故) 구본무 회장의 철학과 뜻이 담겨 있다.

화담숲은 생전 구 회장이 "누구나 자연을 쉽게 즐기게 하라"는 지시로 조성된 곳이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는 의미의 '화담(和談)'은 구 회장의 호이기도 하다. 그는 화담숲을 생전에 여러 차례 방문하며 "죽은 뒤라도 이 숲만큼은 잘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말을 자주 남겼다 한다.

LG그룹은 지난 20일 구 회장의 7주기를 조용히 기렸다. 불필요한 의전과 권위를 거부하는 소탈한 성격인 구 회장은 23년 동안 LG그룹을 이끌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앞장서왔다.

앞서 2018년 5월 20일 73세 일기로 타계한 구 전 회장은 장례식도 '3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렀다. "남들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화와 외부인 조문도 정중히 사양하고 평소 구 전 회장이 즐겨 찾던 화담숲 인근에 수목장으로 영면했다. 당시 대기업 회장의 장례가 회사장이 아닌 가족과 수목장으로 치러진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구광모 LG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은 2019년 1주기 때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400여 명의 임원과 함께 비공개 추모식을 연 바 있으나, 이후부터는 별도의 공식 행사를 지양하고 소박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선대 회장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는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하고, 과한 의전을 경계했던 고인의 리더십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구 회장은 온화하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강단 있는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 정신은 화담숲 곳곳에 깃들어 있었다.

[출처=권영석 기자]
[출처=권영석 기자]

■분재 500여 점, 자작나무·수국·소나무까지…'살아있는 경영 철학'

화담숲은 16개 테마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테마마다 특정 식물종을 중심으로 조성돼 관람객을 맞는다. △2000여 그루의 하얀 자작나무가 뻗은 '자작나무 숲' △무궁화 2500여 그루를 심은 '무궁화 정원' △60여 종의 수국이 군락을 이룬 '수국원' 등이다.

관람객에게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곳은 '소나무 정원'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집된 1300그루의 소나무가 이곳에 심겨 있다. 강원 속초의 하늘로 뻗은 직립형 소나무부터, 경북 포항의 굴곡진 소나무까지 각 지역 특색이 그대로 담겼다.

또 화담숲에는 고 구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분재 500여 점도 전시돼 있다. 이 중 300여 점은 부친인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 직접 가꾼 것들이다. 특히 구 회장은 문인목(文人木)이라 불리는 나무를 애착을 갖고 키운 것으로 알려진다.

화담숲은 단순한 조경 공간 보다는 자연과의 공존을 실현하는 생태 모델에 가깝다.

산책로는 일직선 대신 굽이진 구조로 설계돼 원래 자생하던 나무나 바위를 베거나 치우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채 길을 냈다. 

생태 복원도 화담숲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멸종위기종 2급이자 천연기념물인 남생이(453호)는 2012~2016년 국립공원 연구원과 공동으로 증식 연구를 진행했고, 2017년에는 자체 증식에도 성공했다. 이외에도 천연기념물 어름치(259호), 원앙(327호) 등이 이곳에서 서식하고 있다.

초입에 위치한 ‘자연생태관’에는 국내 토종 민물고기 20여 종, 약 2000여 마리가 전시돼 있다. 천연기념물 어름치는 물론 금강모치·산천어·쉬리 등 청정 수역에서만 볼 수 있는 종들도 직접 관찰 가능하다. 

LG는 최근 화담숲 인근 정광산에 토종 꿀벌 서식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화담숲은 꿀을 품은 나무를 뜻하는 밀원수(蜜源樹, 꿀샘 나무)와 꽃 등 밀원 식물 자원이 풍부해 꿀벌 개체 수가 증가해도 안정적인 먹이 활동이 가능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LG는 앞으로도 꿀벌 생태계 보호를 위해 밀원 식물 수를 더욱 늘린다는 구상이다.

[출처=권영석 기자]
[출처=권영석 기자]

화담숲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 수목원이 아니다. 고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 철학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의식이 반영된 생태공간이다. 

구광모 LG 회장 체제 하에서도 '무형의 가치'를 중시하는 선대의 철학을 계승하는 기류가 뚜렷하다. 자연을 지키고 사람과 생태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화담숲은 단순한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 ESG 시대 기업 역할의 표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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