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신한자산신탁의 책임준공 확약 미이행에 대해 PF 대출 원리금 전액인 256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조항을 단순한 계약상 약속이 아닌 실질적인 담보로 인정한 것으로, 향후 유사한 구조의 소송에 법적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진행 중인 3400억 원 규모의 관련 소송이 줄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신탁 업계 전반에 복합 리스크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항소 여부와 관계없이 법원의 해석 기준이 명확해진 이상, 업계는 PF 구조와 리스크 관리 체계의 전면 재점검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는 지난달 30일 새마을금고 대주단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기한 내 준공 미이행으로 선매입 계약이 해제되고 대출 원리금 회수 기회가 상실됐다"며 계약서에 명시된 손해배상 예정 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해당 사건은 신한자산신탁이 한 복합개발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시작됐다. 신탁사는 사업시행자인 위탁자와 관리형 개발신탁 계약을 체결하고, '책임준공 확약'을 포함시킨 뒤 23개 새마을금고로 구성된 대주단으로부터 PF 자금 256억 원을 유치했다. 계약서에는 "정해진 기한까지 준공하지 못할 경우 발생한 손해(원리금 및 이자)를 배상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었으며, 대주단은 이를 사실상 완공 담보로 보고 자금을 집행했다.
그러나 공사 일정이 지연되면서 우선분양자와의 선매입 계약이 해제됐고, 이에 대주단은 원리금 회수 기회를 잃게 됐다고 주장하며 소송에 나섰다. 신한자산신탁은 "결국 준공은 완료됐고, 향후 매각 등을 통해 회수 가능하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기한 내 준공 실패 자체가 회수 실익을 무력화했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신한자산신탁 측은 자본시장법상 손실보전 금지 조항 위반을 들어 계약 무효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우선수익권은 금융투자상품이 아니며, 이번 계약은 투자 손실 보전이 아닌 채무불이행에 대한 정당한 배상"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문구상 명확히 손해배상 예정액으로 특정된 계약사항이며, 이행하지 못한 경우 전액 배상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단순한 개별 프로젝트의 실패를 넘어 신탁업계 전반에 구조적 리스크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사고 있다. 실제로 현재 신한자산신탁 외에도 KB, 코리아, 우리, 교보 등 주요 신탁사들이 연루된 유사 소송만 13건, 총 3454억 원 규모에 달한다.
신용평가 업계는 이번 판결이 책임준공 확약에 대한 회계상 인식을 바꾸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 그간 '우발채무'로 분류돼 온 해당 책임이 실제로는 충당부채로 선제 반영돼야 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손해배상 충당부채 적립, 유동성 악화, 자산 회수 실패에 따른 대손 비용 확정"등 세 가지 경로로 신탁사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책임준공형 PF 사업장이 대부분 아파트가 아닌 물류·상업시설 중심이라는 점은 자산 유동화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실제로 신탁사들은 2023년 말 기준 19건(3540억 원) 규모였던 책임준공 미이행 사업장이 2024년 1분기에는 34건(78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는 신탁사 전체 자기자본(약 5.7조원)의 14%에 달하는 수치로, 단일 실패 사업이 일부 신탁사의 재무 건전성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한자산신탁은 항소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는 이번 1심 판결이 향후 유사 소송의 법적 기준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한 항소보다, AMC(자산관리회사)로서의 책임 범위 정비, PF 구조 점검, 충당부채 회계 처리 기준 강화 등 실질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책임준공 확약 미이행 시 대주단에게 직접 금전 손실이 전가되는 구조라면, 이는 단순한 신탁업무 범위를 넘어선 법적 책임을 의미한다"며 "신탁업계는 제도적 가이드라인과 회계 기준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