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인간의 눈이 인식 가능한 범위를 220도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물을 선명한 색으로 분별 가능한 시야각은 60도 이내다.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의 파장은 가시광선에 한정된다. 그래서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속담도 있다. 보이지 않으면 모든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시각 정보는 뇌로 전달돼 이후 필요 행동으로 연결된다.
중요한 기관인 만큼 청각과 달리 시각에 문제가 있으면 운전하지 못한다. 주변의 여러 사물 인식 및 사물의 이동 속도, 이동 방향, 명암 등을 순간적으로 알 수 없어서다. 자율주행을 ‘인식-판단-제어’로 구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식’이다. 인식에 오류가 생기면 판단은 잘못되고 제어도 엉뚱한 방향으로 발생한다. 물론 판단 과정에서 오류 인식을 잡아낼 수 있지만 인식의 정확도가 올라갈수록 판단 또한 명확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아직 인식은 완벽하지 않다. 도로에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는 탓이다. 그래서 제안되는 것이 비전 AI의 역할이다. 운전은 인간이 하되 주변 사물 인식은 운전자와 카메라가 함께 수행한다. 이때 카메라는 인간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위험을 인식해 알려주는 일종의 지원자 역할이다. 인간이 볼 수 없는 사각지대 위험성은 물론 운전자 위험까지 경고를 해준다. 앞차와의 간격, 운전자 졸음 여부, 과속, 탑승자 안전 등 인간 운전을 통해 이동하는 모든 과정을 AI 카메라가 인식해 인간 운전자의 안전한 판단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운전 주체는 인간이지만 AI는 인간 운전의 위험성을 최대한 낮춰주는 역할이다. 단순히 위험을 경고하는 것에서 벗어나 운전 행동까지 파악해 운전 습관까지 교정해 준다.
이 같은 비전 AI 시스템을 환영하는 곳은 대중교통 부문이다. 특히 시내, 시외, 고속 등의 버스는 무엇보다 승객의 안전이 최우선이고 안전 책임자는 바로 운전자다. 하지만 인간의 운전 행위를 제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이었던 만큼 제도는 언제나 이동 수단 제어에 초점을 맞췄다. 위험 속도를 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제어하고 사고를 대비해 안전띠를 장착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 인간 운전자를 돕는 것에서 벗어나 행동 패턴까지 학습하는 비전 AI 시스템이 등장해 주목받는다. 한국교통공단과 AI매틱스가 전국 500대 버스에 시범 적용한 결과 사고율이 무려 93.5% 낮아졌다. 단순한 사물 인식이 아니라 승객, 운전자, 도로 등의 사물을 모두 통합 인식해 위험성을 사전에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운전자의 신호 위반은 71.4% 줄었고 전방주시태만도 33.3% 감소했다. 단순히 도로 상황을 파악한 게 아니라 운전 과정에서 벌어지는 외부 상황과 운전 행위를 AI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 결과다.
문제는 적용 여부다. 결국 비용이 발생하는데 운수사업자, 자치단체, 중앙정부 모두 애매한 태도다. 분명 승객 안전에 도움이 되지만 누가 시스템 비용을 부담하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모두에게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도 선뜻 채택되지 못하는 슬픈(?) 이유다. 사고 감소는 보험료 인하로 연결되고 궁극은 사고 처리에 따른 사회적 비용 감소를 가져오는 데도 말이다. 사업자는 미래의 위험 감소보다 당장의 비용 부담을 꺼리고, 자치단체는 세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위험 감소를 운수 사업자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중앙정부는 자치단체와 운수사업자가 혜택을 본다는 핑계를 댄다. 그러는 사이 대중교통 승객은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 운전자 손에 안전을 맡겨야 한다. 기술보다 늘 제도와 비용이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