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를 도입해 내연기관을 대체하면 주행거리만큼 배출권을 부여한다. 탄소 배출 없는 운행에 따른 환경적 가치를 금전으로 보상하는 제도다. 그런데 모든 전기차 운행자에게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소관하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상쇄제도 외부사업 방법론> 가운데 ‘전기차 도입에 따른 화석연료 절감 사업 방법론’은 배출권 부여 대상을 운송 사업자로 한정한다. 반면 개인이 내연기관을 대체, BEV를 운행하면 배출권이 없다. 동일한 주행임을 감안하면 심각한 차별이다. 개인이 도입한 태양광, 히트펌프 등 다른 감축설비 등에는 배출권을 주지만 BEV만 예외다. 한 마디로 공정과 형평의 위배다.
해당 규정을 바꾸려면 국토교통부가 방법론 개정을 환경부에 요청하면 된다. 요청받은 환경부는 일정 기간 이내에 협의를 거쳐 개정을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두 부처 모두 개인에게 부여하는 배출권에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다. 표면적으로는 보조금을 주며 국민에게 BEV 구매를 장려하지만 개별 국민이 받을 수 있는 혜택에는 눈감는다.
물론 배출권 또한 금전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개인의 경우 운행거리 측정이 불투명하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단말기 부착 등으로 운행거리는 실시간 측정이 가능하며 이미 보험사도 활용하는 중이다. 동시에 이전 소유 차종의 폐차 확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도 개선이 미비한 이유는 개인이 운행을 통해 형성한 재산을 정부가 가져가려는 의도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초기 구매 때 정부 또한 보조금을 지급한 만큼 개인 운행을 통해 만들어지는 배출권을 국가 재산으로 환수하려는 목적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BEV 운행으로 만들어진 배출권은 소유를 나눠야 한다. 지역별로 상이하나 현재 운송 사업자가 만들어내는 배출권 재산의 60~80%는 정부가 가져간다. 사업자에게는 20~40%의 배출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개인이 만들어내는 배출권은 정부가 10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반영한다. 개인이 애써 만든 재산권을 정부가 뺏어가는 형국이다. 운송 사업자처럼 개인에게도 동일한 탄소 배출권이 부여돼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 대목이다. 비용의 많고 적음을 떠나 수송 부문의 배출권 자체가 운행자의 화석연료 대체 사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운송 사업자의 탄소 배출권 사업 지역 제한도 논란이다. BEV 탄소 배출권은 BEV 비중이 5% 이하인 곳에 적용된다. 배출권을 줄테니 적극적으로 바꾸라는 뜻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이미 7%에 달해 배출권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경우 지역 내 운송 사업자가 더 이상 BEV로 전환하지 않는다. 구매할 때 받는 보조금 외에 별다른 혜택이 없어서다. 정부의 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가장 앞장서 추진한 지역이 이제는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
배출권 방법론 개정의 필요성은 수소 부문에서도 확인된다. 보조금 많이 주며 수소트럭 및 버스를 보급하지만 배터리 전기 상용차와 달리 운행에 따른 배출권이 부여되지 않는다. 수소를 사용하는 운송 사업자가 수소 에너지 생산 및 이송 과정까지 데이터를 측정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수소차를 구매한 개인 또는 운송 사업자는 수소 생산기업이 비밀리에 관리하는 내부정보를 알 수 없다. 수소 생산자가 시장 선점을 위해 만든 이기적인(?) 방법론을 국토부 및 환경부가 승인한 탓이다. 현대차로부터 수소전기트럭 또는 버스를 구매하는 운송 사업자는 말 그대로 해당 제품을 구매해서 수소 연료를 충전 후 사용할 뿐이다. 따라서 친환경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지금이라도 수소차 역시 BEV와 동일하게 개인 및 운송 사업자가 배출권을 받을 수 있도록 방법론이 개정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정치 못한 제도는 언제나 형평성 논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대로 놔두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빠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