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카드사들의 애플페이 도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출처=현대카드]
국내 카드사들의 애플페이 도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출처=현대카드]

국내 카드사들의 애플페이 도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연초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의 서비스 제휴 준비 소식이 전해지며 애플페이 확산 기대감이 커졌지만 반년 째 뚜렷한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국내 카드사 전반의 수익성 악화와 비용 부담 우려가 발목을 잡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까지 현대카드에 이어 애플페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드사는 없다. 

신한·KB국민카드가 애플페이 도입을 위한 준비 절차를 밟고 있지만 서비스 개시 시점에 대해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양사 모두 금융당국의 약관 심사는 물론 애플페이 개시 시점에 맞춰 진행할 프로모션까지 대부분의 준비가 끝났지만 선뜻 뛰어들진 못하는 상황으로 해석했다. 

신한, KB국민카드 모두 애플페이와 관련한 말을 아끼고 있다.

중소형 카드사의 경우 애플페이 도입 여부 자체를 유보한 채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애플페이 도입 확산이 더딘 것은 카드사들이 추가적인 사업을 벌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카드업계는 지난 12년간 지속된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에선 가맹점 수수료 인하 여파로 최소 9조2700억원, 많게는 25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경기 둔화로 신용판매 실적이 감소하고, 연체율까지 상승하면서 전반적인 수익성이 약화됐다.

8개 전업 카드사들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604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5% 감소했다.

수익방어 수단으로 쓰던 카드대출(카드론) 영업도 내달 3단계 DSR이 시행되면 위축이 불가피하다.

업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애플페이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실익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애플페이는 MZ(밀레니얼+Z)세대의 아이폰 선호도와도 맞물려 미래 고객 확보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현대카드는 2023년 3월 애플페이 도입 이후 한 달간 신규 카드 발급량이 전년 대비 2.5배 증가했으며, 신규 고객의 79%가 20~30대였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 결제 표준으로 자리 잡은 점도 애플페이 도입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애플페이 도입 시 발생하는 수수료가 카드사에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애플은 카드사로부터 결제액의 최대 0.15%를 수수료로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그간 수수료를 받지 않던 삼성페이 마저 형평성을 이유로 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현대카드가 애플페이를 도입한 지난 2023년에도 유료화를 추진했었다. 다만 삼성전자 측이 상생 차원에서 카드사와 수수료 무료 계약을 연장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당시 카드업계는 삼성페이 유료화 시 연간 수천억원의 수수료 부담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한국은행의 간편지급 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삼성페이가 0.15%의 수수료율을 부과할 경우 약 997억원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애플페이는 341억원으로, 카드사는 총 1338억원의 비용을 내야하는 입장이다.

대규모 단말기 교체 비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현재 국내 신용카드 가맹점 중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반 결제가 가능한 EMV 단말기를 갖춘 곳은 약 10%에 불과하다. 애플페이 편의성 확대를 위해 단말기를 바꿀 경우 카드사와 가맹점 모두에게 추가 투자 부담이 뒤따른다.

애플페이 도입에 따른 카드 이용액 증가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도 후발주자가 서둘러 나오지 않는 이유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발표한 '페이 서비스의 유료화 확대에 따른 카드사의 비용 부담'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페이 도입 전후 카드 이용액은 연간 약 2조 4000억원 늘었다. 도입 전(2019년 1분기~2023년 1분기), 도입 후(2023년 2분기~2024년 4분기)가 기준으로, 당기순이익은 44억4200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김 교수는 "도입 이후 현대카드의 개인·법인 카드 이용액이 모두 늘었으나 물가상승이나 마케팅 확대 등 이외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며 "카드사들이 애플페이를 도입해도 당기순이익 측면에서 이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애플페이 도입이 미래 고객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지금처럼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며 "추가적인 비용문제, 도입 효과 등 복합적 요인이 카드사들의 판단을 늦추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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