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출처=연합]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출처=연합]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업들의 지배구조에도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 권한을 대폭 강화해 주주 중심 경영을 실현하겠다는 데 있는데, 오너 중심 경영이 뿌리 깊은 국내 전통 제약사들은 그 여파를 피해가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여야가 합의한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본회의에서 272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찬성 220명·반대 29명·기권 23명으로 상법 개정안을 가결 처리됐다. 

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를 의무화하고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전환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번 상법 개정안 통과로 국내 전통제약사들도 변화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국내 상당수 제약사들은 오랜 기간 가족경영 체제와 오너 중심의 이사회 구조를 유지해왔다. 

창업주 또는 그 가족이 회사의 핵심 의사결정을 사실상 전담하면서 연구개발(R&D) 투자부터 신사업 진출까지 빠르고 유연하게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 제약업계 특유의 성장 동력이었다는 평가도 많았다.

하지만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의 책임성과 독립성이 강화되고 소액 주주의 권리가 커지면서 이런 의사결정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가족 중심으로 운영돼 온 이사회 구조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하고 이에 따라 의사결정 절차는 더 복잡해지고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상법 개정으로 이사들의 충실의무가 강화되고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경영진에 대한 견제 수단을 더 갖게 되면서 오너 경영의 독단적 결정이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한편으로는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변화에 따르는 비용과 절차적 부담이 단기간에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제약업계는 공격적인 R&D 투자로 신약 개발과 글로벌 진출을 꾀하며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주주 환원 정책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지면서 단순히 R&D만 잘한다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주주 권한이 강화되면서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으로 직접적인 주주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안도 필요하게 될 수 있다. 이는 시설투자나 신사업에 배분될 수 있는 재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배당을 받으면서도 회사가 신약 개발에 몰두하기를 바란다”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회사의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상법 개정은 투자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동안 소액 주주들은 대기업과 달리 오너 중심의 경영 시스템 아래에서 의견을 반영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번 상법 개정으로 경영진에 대한 견제 장치가 다각도로 보완되면서 투자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전통제약사들도 과거처럼 R&D 성과만으로는 시장에서 고평가를 받기 어려워 질 것”이라며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친화 정책이 투자 판단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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