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이 통과하면서 유통 그룹 3사의 경영 전략에 중대한 변곡점이 찾아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출처=EBN]
상법개정안이 통과하면서 유통 그룹 3사의 경영 전략에 중대한 변곡점이 찾아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출처=EBN]

소수주주 권한이 대폭 확대되고 이사의 충실·공정 의무가 강화되면서 유통 대기업들의 경영 전략에도 중대한 변곡점이 찾아오고 있다.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업 지배구조의 패러다임이 '지배주주 중심'에서 '주주 중심의 이사회'로 본격 이동할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특히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 유통 그룹 3사는 지주사 체제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잡한 지배구조와 낮은 총수 일가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어 이번 법 개정의 핵심 타깃으로 지목되고 있다.

다만, 기업들이 우려하는 배임죄 남발, 경영권 분쟁 격화, 주주대표소송 급증 등은 지나치게 과장된 해석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법적·제도적 현실을 고려할 때 기업들이 주장하는 경영권 위협은 실제로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롯데, 소수주주 견제 가능성 커

롯데그룹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낮아 소수주주의 견제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롯데지주의 최대주주는 신동빈 회장으로 그의 개인 지분율은 약 13% 수준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롯데지주 관계자는 "특수관계인 의결권 지분률이 60%가 넘어 안정적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법 개정으로 소수주주의 의결권과 이사 선임 권한이 확대되면서 일본 롯데홀딩스와의 지배구조 문제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롯데지주에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이 없지만 일본 롯데홀딩스는 여전히 롯데그룹의 일부 계열사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 투명성 강화와 구조 개편 압박을 동시에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신세계, 주주 친화 정책 시험대

신세계그룹은 지주사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계열사가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고 일부 계열사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율이 절대적으로 높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개정으로 소수주주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자본시장 내 주주 행동주의가 활발해지면 배당 확대·자사주 매입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강화해야 할 압박이 심화될 수 있다.

주주 권한이 실질적으로 확대된 만큼 이사회의 독립성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투자자들의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대백화점, 계열사 합병 견제 가능성 부각

현대백화점그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경영을 추구해왔지만, 지주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여전히 복잡한 계열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상법 개정으로 소수주주들이 그룹 내 합병·분할·지배구조 재편 과정에 적극적으로 견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향후 현대백화점그룹이 추진할 수 있는 대규모 구조 개편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저항이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번 법 개정은 유통 대기업에게 단순한 법령 변경이 아니라, 경영 전략·지배구조·주주 정책 전반을 재정비해야 하는 전방위적 과제를 던진 셈이다.

■'경영권 축소' 우려, 과도한 주장

일부 기업들은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배임죄 남발, 경영권 분쟁 격화, 주주 대표소송 급증 등이 대표적인 우려 사항이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이러한 반발이 지나치다고 보고 있다.

법원은 오랫동안 '경영 판단의 원칙'을 적용해 기업 경영진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해왔다. 또한, 소수주주와 지배주주 간의 이익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충실 의무가 실제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판례를 봐도 법원이 기업 총수나 경영진에게 배임죄를 엄격히 적용한 사례는 드물다.

이사회 구성 변화에 대한 우려 역시 과장됐다는 평가다. 현재 통과된 법안만으로 소수주주가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독립적인 주주 추천 이사가 선임될 수 있는 자리도 제한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여야는 재계가 제기하는 배임죄 남용 우려를 일정 부분 수용해 형법상 배임죄 면책 규정 개정을 후속 입법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경영상 판단'이 이뤄진 경우 배임죄 적용을 면제해주는 예외 규정을 법 조문에 명시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 기업의 경영상 판단이 형사 처벌로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될 가능성이 열렸다는 얘기다. 

개정안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선임 의무화 등 보다 강한 주주 권한 보장 장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상법 개정이 이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이번 상법 개정은 기업들에 대한 과도한 제약이 아니라 주주 권리를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글로벌 스탠다드로 맞춰가는 출발점이라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2023년 G20과 OECD가 발표한 경영책임 가이드라인에서도 회사 경영진의 주된 책무는 '주주 이익 보호'임을 명시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주역인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 자본시장과 경제 질서의 헌법과도 같은 기본 원칙을 정립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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