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시대다. 금리는 오르고, 물가는 치솟는다. 경기는 정체되고, 줄어드는 일자리에 고용은 불안하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버티는 삶’이 일상이 됐다.
노동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는다는 말보다, 현실이자 생존이라는 말이 더욱 와 닿는 시대다.
기업과 근로자들의 임금 및 단체 협상의 시즌이 돌아왔다. 뉴스에서는 벌써부터 ‘파업 예고’에 대한 기사가 이어진다. 이런 기사에 누군가는 말한다. “또 파업이야?”
왜일까. 국민 대다수는 근로자다. 그럼에도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건 아마도 ‘파업’이라는 말이 더 이상 절박함이나 절제된 결단으로 다가오지 않는 ‘가벼움' 때문일 것이다.
파업이 협상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교섭 초기부터 파업 찬반 투표를 올리고, 쟁의권을 확보하고, 일정표가 만들어진다. 임단협의 일종의 '기본 패키지'처럼 여겨진다.
파업은 권리가 아니라 ‘전략’이 되고, 결단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파업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시대다.
이쯤 되면 묻고 싶어진다. 정말로 지금 필요한 것이 파업인가, 아니면 대화인가. 협상의 본질이 사라지고, 힘의 겨루기만 남은 노사관계는 무엇을 낳을 것인가.
기업이 모든 걸 잘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의 기업은 단기 실적보다 장기 생존을 고민한다. 단순한 이익 창출을 넘어 기업가치 제고를 목표로 한다. 지속가능성과 글로벌 투자까지 고려하는 시대다.
반면 근로자들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한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게 불안한 세상에서, 미래보다 오늘이 급한 사람들이 많다. 노사 간의 시각차, 접근방식의 차이는 당연히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파업은 무거워야 한다.‘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권리의 무게를 다시 새기자는 말이다. 파업은 무기이자 결단이다.
절박한 사람의 외침인 동시에, 누군가의 생계에 닿는 칼끝이기도 하다.
파업은 전쟁과 같다. 전쟁이 평화의 대안일 수 없는 것처럼, 파업 또한 협상의 ‘대체물’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파업은 더욱 무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