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그룹 사옥.[출처=부영그룹]](https://cdn.ebn.co.kr/news/photo/202507/1669888_685406_4458.jpg)
부영그룹의 ‘아메리칸 드림’이 17년 만에 미완으로 막을 내렸다. 2007년 미국 부동산 시장 공략을 위해 설립된 현지 법인들이 단 한 줄의 수익도 내지 못한 채 청산 수순을 밟았고, 수백억 원에 달하는 투자금과 운영자금은 전액 손실 처리됐다. 법인의 자산 가치는 '0원'으로 정리됐고, 그간 투입된 자금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부영그룹은 2024년 회계연도 중 미국 현지법인 부영 아메리카(BOOYOUNG AMERICA, LLC), BOOYOUNG Investment & Management INC, BOOYOUNG TEXAS, LLC 등 세 곳을 청산했다. 이들 법인은 부동산 개발 및 임대를 목적으로 설립됐으나, 수익 없이 장기간 유지돼 왔다.
청산 직전 부영 아메리카의 자산은 약 1억 9658만원, 부채는 약 23억 4467만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으며, 일부 남은 자산도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돼 장부가치는 0원으로 감액됐다.
Investment & Management INC 역시 2024년 기준 자산 18억원, 부채 6억 6천만 원 수준의 미미한 실적만 남긴 채 청산 절차를 밟았다. 부영그룹은 이들 미국 법인에 대해 기존 투자주식 약 46억원, 장기대여금 약 19억원 등 총 65억원을 전액 손상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감사보고서에 자산 가치가 0원으로 정리된 점과 과거 회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 추정치다.
하위 법인인 BOOYOUNG TEXAS, LLC는 부영 아메리카를 통해 간접 보유된 회사로, 감사보고서에 직접 청산 언급은 없지만 상위 지주사들이 모두 정리된 만큼 함께 청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별도 손상 항목으로 구분되진 않았으며, 관련 자산은 상위 법인에 통합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설립된 부영 아메리카는 ㈜부영이 지배하는 자회사 ㈜부영주택이 지분 99.9%를 보유한 종속회사다. 2007년 미국 부동산 개발의 전초기지로 설립됐고, 당초 ㈜부영의 직접 지분율은 10%에 불과했으나 2011년 제3자로부터 나머지 지분을 인수하면서 완전 지배 구조를 갖췄다. 이후 Investment & Management INC, BOOYOUNG TEXAS, LLC 등을 아우르며 사실상 미국 내 지주회사 체계로 운영됐다.
하지만 2011년 이후에도 실질적인 사업은 전혀 추진되지 않았다. 단 한 건의 매출도 없었고, 유지 비용만 반복 지출됐다. 2023년 회계연도에 약 12억 20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으나, 이는 외화 환산차익이나 자산 정리 등에 따른 회계상 일회성 이익으로, 사업성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법인이 장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속적인 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 덕분이었다. 부영그룹은 지분 출자뿐만 아니라 장기대여금 형태로 수차례 운영 자금을 투입해 왔다.
그러나 수익 실현 가능성은 희박했고, 자산 회수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더 이상 유지하기에는 재무적·명분적 부담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국내외 법인의 실적 부진, 대규모 자산 손상, 해외 법인의 환산손실 등이 동시에 반영되며, 해외 사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여기에 정치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다. 2022년 한덕수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영 측이 특정 예술인의 작품을 수천만 원에 매입했고, 해당 예술인의 가족이 미국 현지 법인장을 맡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부영 측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법인 운영을 둘러싼 외부의 의심은 끝내 해소되지 못했다.
사업성과 부재, 회계적 부담, 사회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해당 법인들은 존속 명분을 상실했고, 그룹 전체의 명성과 재무 안정성에 부담을 주는 구조적 한계 속에 결국 미국 법인들은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17년간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지만, 결과적으로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하고 모든 투자금이 사라진 셈"이라며, "이번 청산은 단일 법인의 실패를 넘어, 부영그룹 해외 사업 전략 전반이 뼈아픈 점검대에 오른 사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