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출처=연합]](https://cdn.ebn.co.kr/news/photo/202507/1670674_686325_190.png)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국가 주거정책의 실행 기관이자, 정권마다 '개혁 1순위'로 지목돼 온 공공기관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 반복된 개혁 시도는 대부분 선언에 그쳤고, 실질적 변화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왜 LH 개혁은 번번이 실패하는 걸까. <EBN>은 정치적 구호로 소비돼 온 LH 개혁의 실체를 진단하고, 실패의 구조적 원인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LH는 단순한 공기업이 아니다. 부동산 공급부터 도시개발, 공공임대주택 운영까지 전방위적으로 주택정책을 실행하는 핵심 기관이다. 그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LH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 대상으로 지목돼 왔지만, 진정한 개혁은 이뤄진 적이 없다. 공언은 매번 거창했지만, 결과는 대체로 '용두사미'에 그쳤다. 왜 LH 개혁은 번번이 실패하는 걸까.
LH 개혁은 통상 '정권 초 개혁 선언 → 조직 개편 시사 → 개혁안 발표 → 흐지부지'라는 전형적인 경로를 밟아왔다. 2021년 3기 신도시 땅 투기 사태 당시 문재인 정부는 LH 해체 수준의 혁신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부서 통폐합에 그친 채 조직 구조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2023년 철근 누락 사태 이후 윤석열 정부도 전관예우 근절, 기능 축소 등 개혁 방향을 제시했으나, 실질적인 변화 없이 TF 설치 수준에 머물렀다.
LH의 개혁이 매번 좌초되는 데는 여러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시장과 전문가들은 그 첫 단추로 '정치권의 개혁 이벤트화'를 꼽는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국민 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개혁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지만, 정작 실행은 더뎠고 실효성은 부족했다. 언론 브리핑과 공청회는 반복됐지만, 조직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조치는 번번이 지연되거나 후퇴했다. 개혁의 방향이 문제 해결보다는 여론 수습에 맞춰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8월 LH가 발표한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다. 당시 이한준 LH 사장은 전국 15개 아파트 단지에서 드러난 철근 누락 사태를 계기로 부실 시공 업체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도입을 선언했다. 관련 업체 수사의뢰도 함께 발표됐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개혁이 선언에 그친 전형적인 사례였다.
두 번째 장벽은 조직 내부의 견고한 관료체계다. 연간 수십조 원의 예산과 수천 명의 인력을 운용하는 거대 공기업 LH는 복잡한 업무구조와 높은 전문성을 앞세워 외부 개입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내부에서는 "문제는 일부 직원의 일탈일 뿐, 조직 구조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뿌리 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개혁 시도 역시 '정치적 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있다.
전관예우와 협력업체 간 '카르텔' 또한 개혁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 병폐로 지적된다. LH 퇴직자가 설계사, 시공사, 감리업체 등에 재취업해 계약을 따내는 구조는 공공사업 전반에 만연해 있으며, 이들은 강력한 네트워크로 얽혀 있다. 실제로 인천 검단신도시 15개 단지의 설계·감리 업체 중 31곳이 LH 전관이 재직한 회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수년간 수천억원 규모의 용역을 사실상 독점해 왔으며, LH와의 내부 네트워크가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정부가 전관 계약 제한 조치를 몇 차례 내놨지만, 소송 부담과 실무 혼선으로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카르텔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구조적 부실과 부패를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평가다.
LH가 안고 있는 정체성의 모순도 개혁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기관이면서 동시에 자산개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LH의 이중적 역할은 정책 우선순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임대주택 공급과 같은 공익사업과 수익성 높은 택지 매각·개발이 공존하다 보니 개혁 논리는 조직 내부에서도 설득력을 잃기 쉽다.
137조원에 달하는 부채 규모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작용한다. 2023년 말 기준 LH의 부채는 비금융 공공기관 중 최대 수준이다. 공공주택 확대 정책에 따라 차입은 늘고 있으며, 고금리 기조는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능 축소나 조직 분할은 곧바로 재무 리스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LH 개혁이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는 결국 정치, 조직, 구조, 제도 네 축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업계는 이 네 축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개혁은 또다시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과거 수십 년간 반복된 '선언-후퇴' 사이클을 끊으려면 정치적 의지와 함께 치밀한 실행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LH 개혁은 늘 정치적 상징으로 소비돼 왔지만, 정작 실현 가능한 설계나 인내는 부족했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선언과 후퇴의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LH에 대한 신뢰 회복은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