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 망성면 소재 하림 익산공장 정문 앞 모습. [출처=전제형 기자]
전북 익산시 망성면 소재 하림 익산공장 정문 앞 모습. [출처=전제형 기자]

“식품의 본질은 맛이며, 최고의 맛은 신선한 식재료에서 나온다.”

지난 25일 전북 익산시 함열읍. 대지를 가득 채운 태양이 숨 막히는 7월의 열기를 뿜어내던 날 산업단지 한가운데 자리한 회색빛 식품단지에 들어서자, 정문 왼편 상단에 ‘하림’이라는 커다란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름 하(夏), 수풀 림(林). ‘여름 숲’이라 읽히는 이 사명에는 “한여름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숨이 턱 막힐 듯한 복사열 속에서 공장을 오가는 차량들과 차갑게 냉각된 물류동 안을 오르내리는 물류 로봇들을 바라보며, 그 이름이 지닌 함의가 피부로 와 닿았다.

그 순간 하림이 단순한 기업명이 아닌, 여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기억하고 배려하는 철학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 곳은 하림 ‘퍼스트 키친(First Kitchen)’. 이곳은 단순히 가공품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다. 갈비탕, 육개장, 볶음밥, 된장찌개, 치킨너겟 심지어 라면 액상스프에 이르기까지 가정에서 직접 요리하지 않아도 될 ‘맛집 수준의 음식’들이 탄생하는 거대한 공유주방이다.

하림은 퍼스트 키친을 단순한 공장 개념이 아니라 ‘온 국민의 공유 주방’이라 정의한다. 주방이 집 안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시대, 하림은 주방을 사회의 외부로 확장시키며 대한민국 식생활의 구조를 다시 짜고 있다.

전북 익산시 합열읍에 위치한 ‘하림 퍼스트 키친(Harim First Kitchen)’ 전경. [출처=하림]
전북 익산시 합열읍에 위치한 ‘하림 퍼스트 키친(Harim First Kitchen)’ 전경. [출처=하림]

퍼스트 키친은 기존 식품공장과 근본적인 지향점이 다르다. 이곳은 조리의 기능이 가정에서 빠르게 소멸하는 현실에 대응해 그 기능을 산업화하고 품질을 표준화해 낸 시스템이다. 실제로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요리를 하는 주방’보다는 ‘식사만 하는 공간’이 주택 내에서의 기능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림은 이를 ‘조리와 식사의 분리’로 진단하고, 퍼스트 키친이 그 공백을 메우는 공간으로 설계됐다고 설명한다.

퍼스트 키친 단지는 K1~K3동과 스마트 물류센터(FBH·Fulfillment by Harim), 소비자 체험관 등을 포함한 약 12만㎡ 규모다. 국·탕·찌개부터 볶음, 소스, 조미육, 즉석밥, 라면류까지 제품별 전용 동에서 생산되며, 전 공정은 HACCP 인증 기반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하림 퍼스트 키친의 가장 강력한 원칙은 ‘신선함’이다. 국내산 또는 동등한 수준의 원물만 사용하고, 인공첨가물은 배제한다. 특히 라면용 액상스프는 90도 이상 고온에서 육수를 직접 농축하며, 모든 소스와 양념류도 천연 농축방식을 채택한다.

이 같은 철학은 하림의 프리미엄 브랜드 ‘더(The) 미식’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어린이 간편식 ‘푸디버디’, 스트리트 간식형 제품 ‘멜팅피스’ 등도 하림의 식재료 원칙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더미식 장인라면 공정 과정 중 일부 모습. [출처=하림]
더미식 장인라면 공정 과정 중 일부 모습. [출처=하림]

이와 함께 전북 익산시 망성면 소재 하림 익산공장에서는 닭고기의 종합 처리 과정이 진행된다. 하림은 지난해 기준 국내 도계 시장에서 35.4%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도계·가공·물류·유통까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수직계열화 구조 덕분이다.

국내에만 도계장 4곳, 가공공장 6곳, 사료공장 3곳을 보유하고 있고 미국 델라웨어주에도 별도 법인을 운영 중이다. 연간 도계수는 3억3000만 수에 이르며, 1167개 농가가 하림 계열 시스템과 계약 사육 형태로 협력하고 있다.

하림의 사육 효율(FCR)은 1.436으로, 글로벌 식품 대기업인 미국 타이슨푸드(1.656)보다 낮다. 평균 사육 기간은 35~38일, 1일 증체량은 52.4g으로 효율과 생산성을 동시에 갖춘 구조다.

하림은 국내 중심의 닭고기 산업에서 나아가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전북 익산시의 푸드트라이앵글은 도계·가공·물류·수출까지 하루 만에 가능하도록 설계된 일종의 ‘식품 도시’이며, 이를 기반으로 동북아 및 중화권 수출에 집중하고 있다.

1.64kg의 중형 닭 위주의 균형 잡힌 고기 구성, 자연 중심의 가공 시스템은 아시아 시장에 적합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하림은 국내 육계 농가의 94%가 속한 계열화 시스템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꼽힌다. 종란부터 사료, 부화, 사육, 도계, 가공까지 일관된 체계를 유지하며 제품 균질화와 안정성을 확보했다.

농가와의 계약을 기반으로 한 상생 시스템도 지속 확대되고 있으며 교육, 방역 지원, 정산 기준 투명화 등의 프로그램도 병행 중이다.

하림의 성장은 분명 한국 식품산업의 혁신적 구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조리와 식사를 분리한 퍼스트 키친 모델, 무첨가 철학, 효율성 높은 계열화 시스템 모두가 미래 식탁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하림 익산공장에서 도계된 닭의 에어 칠링(Air Chilling)이 실시되는 모습. 에어 칠링은 닭을 냉수 대신 차가운 공기(냉풍)로 냉각하는 방식으로, 북미·유럽 등에서 위생과 품질 향상을 위해 선호하는 냉각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림은 해당 방식을 대규모로 도입해 운영 중이다. [출처=하림]
하림 익산공장에서 도계된 닭의 에어 칠링(Air Chilling)이 실시되는 모습. 에어 칠링은 닭을 냉수 대신 차가운 공기(냉풍)로 냉각하는 방식으로, 북미·유럽 등에서 위생과 품질 향상을 위해 선호하는 냉각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림은 해당 방식을 대규모로 도입해 운영 중이다. [출처=하림]

하지만 그 이면엔 몇 가지 숙제도 남아 있다.

산업화가 가속화될수록 식문화의 다양성과 조리 과정의 정서적 가치가 소외될 수 있으며, 계열화 구조 속에서 농가의 자율성과 협상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시장 확장 역시 ESG, 동물복지, 식품윤리 등 새로운 기준에 부합하는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

하림은 이제 ‘맛’과 ‘신선함’을 넘어, 책임성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함께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하림 관계자는 “‘퍼스트 키친’을 중심으로 국내 식생활의 패러다임을 선도해 나가는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K-푸드 생산기지로 자리 잡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식품 생산, ESG 경영 강화, 소비자 맞춤형 제품 확대 등을 통해 하림만의 식문화 생태계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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