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태진 학교장 "안내견의 길 안내는 세상 행복한 놀이"

이른바 ‘똥꼬발랄(사고치고 혼나도 금방 회복되는)’한 예비안내견인 강아지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빠'가 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박태진 교장이다.

박태진 교장에게선 여느 대기업 조직원에게서 볼 수 없었던 '기쁨과 행복'이 넘쳐흘렀다.

삼성화재 입사와 함께 32년째 안내견학교에 몸담은 그는 천방지축 강아지들이 늠름한 안내견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아온 산증인이다. 그래서일까. 박 교장은 넉살 좋아 보이는 ‘인절미’ 리트리버와 닮아 보이기도 했다.

수의사이기도 한 박 교장을 만난 지난 26일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32주년 행사가 열린 날이다. 퍼피워커(안내견 훈련 일반가정 봉사자), 시각장애인 파트너, 은퇴견 입양가족, 훈련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박 교장은 새 파트너를 만난 8마리의 안내견과 새 가정으로 입양되는 5마리 은퇴견을 바라보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박 교장은 안내견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있다고 했다. 최근 지하철 바닥에 곯아떨어진 안내견 사진이 온라인에 회자됐다. 사람들은 만원 지하철 속에서도 잠든 안내견을 위해 길을 터 공간을 만들었다. 잠을 깨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 해프닝을 계기로 누리꾼들은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안내견의 이만저만한 고생을 염려했다.

이에 박 교장은 오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안내견이 지하철에서 편하게 자는 이유는 지하철이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지하철 의자에 시각장애인 파트너가 앉아 있으니 안전하다고 인식해서다. 박 교장은 또 안내견이 '고된 노동'을 한다고도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안내견에게 '안내'는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산책이자 놀이로 받아들여져서다.

그래서일까. 매일같이 파트너와 '안내놀이'를 하는 안내견은 일반 반려견보다 수명이 길다. 안내견학교에 따르면 은퇴 안내견은 평균 수명이 14세로, 일반 리트리버의 평균 수명은 12.5세다.

박 교장에 따르면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태어난 강아지(예비 안내견)가 안내견이 되기까지는 통상 2년이 소요된다. 평균 열 마리 중 세 마리가 안내견이 된다. 예비 안내견은 생후 8주까지는 안내견학교에서 형제자매들과 성장한다. 이후 8주부터 생후 1년까지는 사회화를 위해 ‘퍼피워킹(Puppy Walking)’을 거친다. 예비 안내견이 민간 자원봉사자 가정에 1년간 위탁돼 다양한 체험을 하는 실습과정이다.

사람이 성인이 되는 과정인 셈인데 예비 안내견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쇼핑몰도 둘러보며 사회성을 넓힌다. 안내견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인간과 이 사회에 대해 집중적으로 학습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예비 안내견이 퍼피워킹을 하며 긍정적인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할 수 있도록 한다. 안내견학교와 가까이 있어야 하고 자원봉사자들과 24시간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렇게 퍼피워킹을 마친 예비 안내견들은 다시 안내견학교로 돌아와 ‘안내견 적합성 종합평가’를 받는다. 안내견이 되지 못한 개들은 일반 가정에 반려견으로 분양된다.

안내견이 되는 비율이 30%에 불과하다는 점에 대해 박 교장은 "안내견학교는 안내견을 억지로 육성하는 곳이 아니"라면서 "학교는 개에 맞게 안내견의 삶과 일반 반려견의 삶을 찾아주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또 "안내견으로 살아도 가치 있고 일반 가정에서 반려견으로 살아도 행복하기 때문에 뭐가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안내견과 일반견이 각자 행복을 찾아 살고 있지만 안내견이 더 오래 사는 이유는 일단 안내견의 종견과 모견이 건강해서다. 또 보호자와 늘 함께 하기 때문에 일반 강아지보다 더 깊은 안정감을 가질 수 있기도 하다. 안내견이 훈련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자주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도 강점이다.

이날 행사에서 안내견 8마리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등 새 가족을 만났고 은퇴견 5마리가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김예지 의원은 네번째 안내견 '태백'의 파트너가 됐고 은퇴견 5마리는 누군가의 길잡이 역할을 마감하고 한 가정의 평범한 반려견으로 살게 된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업이 운영하는 안내견학교다. 박 교장은 아직까지 세계 유일 기업계 안내견학교라는 타이틀은 유효하다고 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지난 1993년 9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직후 장애인과 안내견을 향한 사회적 인식을 향상시키겠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시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세상에 나와 길을 누빌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고 이건희 회장의 지론이었다. 삼성 안내견학교는 이런 철학으로 설립됐다. 학교에서 배출된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의 삶을 바꾸고 사회적 의식도 바꾸어 나갈 것이란 믿음에서 운영되고 있고 사회 복지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이며 문화적 마인드라는 뜻이다.

1994년 첫번째 안내견 '바다' 이후 매년 약 15마리씩 지금까지 총 308마리를 분양했다. 현재 85마리가 활동 중이다. 박 교장은 "고 이건희 회장의 혜안과 신념, 그리고 모든 이들의 사랑과 헌신이 삼성 안내견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며 "이 같은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귀여운 강아지가 듬직한 안내견으로 성장해 우리 사회 일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이 역할은 조직(삼성)에서 가장 행복한 보직일 것"이라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