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대한상의]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대한상의]

"대한민국 경제 성장이 정체돼 있습니다. 이 문제를 직시하고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최태원 회장은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대한상의·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이 주축으로 참여한 '기업성장포럼' 출범식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하며 경제 활력 부진의 근본 원인으로 '계단식 규제'를 지목했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성장을 동시에 이뤄낸 나라였지만 최근 민주화는 잘 되고 있는 반면 성장은 멈춰섰다"며 "민주화는 표로, 성장은 돈으로 측정하는데 두 지표가 충돌하면서 정책 방향도 어긋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지난 30년간 민간 성장 기여도가 급락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1994년만 해도 민간 기여율이 8.8%포인트였는데 지금은 1.5%포인트로 줄었다"며 "정부 기여도는 0.6%에서 0.5%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결국 민간의 활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조업만 봐도 대기업 매출 증가율 하락 속도가 중소기업보다 더 컸다. 중소기업이 100만 개 넘는데 중견기업은 5000 개뿐이고, 중소기업에서 중견으로 성장하는 비율은 0.04%에 불과하다"며 "반대로 중견에서 다시 중소로 내려오는 회귀율은 6.5%다. 성장 인센티브가 전혀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문제의 핵심을 '계단식 규제'라고 봤다. 그는 "자산 5000억 원이 넘으면 중소기업이 아니고 규제가 94개로 늘어난다. 2조 원이 넘으면 규제가 더 늘고, 5조 원이 되면 대기업으로 분류돼 329개 규제가 적용된다"며 "의류업은 매출 1500억, ICT는 800억, 숙박업은 400억 원만 넘어도 중소기업 지위가 박탈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기업이 성장하기보다 현상 유지나 분할을 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며서 "대기업이 되지 않으려 편법을 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이 커지면 불이익이 쏟아지니 대기업 진입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이는 모순이자 성장 포기 신호"라고 꼬집었다.

해법으로는 ‘성장 기업 중심 지원’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지금은 기업 규모에 따라 지원 여부를 가르지만, 앞으로는 ‘작으니까 지원’이 아니라 ‘성장했으니 지원’으로 바꿔야 한다"며 "수출주도 경제 시절처럼 일정 실적을 달성하면 더 많은 금융을 제공했던 방식이 지금에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글로벌 경쟁 차원에서도 규제 철폐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처럼 전략적 투자가 가능한 구조가 한국에는 없다. 금산분리 등 규제 탓에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 수 없다"며 "이대로는 AI, 모빌리티, 첨단산업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2조 원 허들이 있는 현행 상법 규정도 기업 확장을 가로막는다. 자산 1조9000억 원 기업은 더 키우려 하지 않고 되레 줄이려 한다"며 "기업이 성장을 피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회장은 이날 포럼에서 세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계단식 규제 전수조사 및 불필요 규제 철폐 △기업 성장 결과 기반 지원체계 전환 △대기업 성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다.

그는 "대기업이 되는 걸 칭찬하고 훈장을 줘야 한다. 유니콘도 결국 대기업"이라며 "성장을 억제하지 말고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효과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중소기업 톱100이 현재 자산 18조 원으로 3조 원 이익을 내는데, 성장 인센티브만 제대로 주면 자산 50조 원으로 확대해 연 8조 원 이익을 낼 수 있다. 매년 5조 원 부가가치가 추가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최 회장은 "지금도 RE100 산단, 메가 샌드박스 같은 개념을 내놨지만 실제 지원은 중소·중견에 집중돼 앵커 기업들이 리스크를 떠안지 않으려 한다"며 "제대로 된 규제 프리존을 만들어 성장 동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3%, 5%의 성장을 지속하려면 성장 억제형 규제를 과감히 바꿔야 한다"며 "민주화와 성장을 동시에 지켜내는 길은 결국 기업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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